안상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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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한국전쟁 발발====
1950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2143 한국전쟁(6.25전쟁)]이 발발했다. 6월 25일 새벽 38선을 넘은 북한군은 순식간에 남한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남하했다. 1개월 만에 대전 시내에 돌입, 대구, 마산, 포항까지 점령한 후 부산을 목표로 진격했다. 한국군과 유엔 연합군의 반격으로 북한군은 부산을 점령하지 못하고 9월부터 북으로 패퇴했다. 1953년 마침내 휴전이 성립됐다. 일제의 식민 통치와 연이은 전쟁으로 대한민국은 초토화되었다. 가옥 60만 채가 파괴되고 전쟁미망인 20만 명, 전쟁고아 10만 명이 생겼다. 공업 시설 45%가 가동 불능상태가 되어 경제도 무너졌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ndex.php?title=%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D%95%9C%EA%B5%AD%EC%82%AC/%ED%98%84%EB%8C%80%EC%82%AC%ED%9A%8C%EC%9D%98_%EB%B0%9C%EB%8B%AC/%EC%8B%9C%EB%A0%A8%EA%B3%BC_%EB%AF%BC%EC%A3%BC%EC%A3%BC%EC%9D%98%EC%9D%98_%EB%B0%9C%EC%A0%84/6%C2%B725%EC%A0%84%EC%9F%81&oldid=198078 |제목=6·25전쟁 |웹사이트=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 }}</ref><br>
1950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2143 한국전쟁(6.25전쟁)]이 발발했다. 6월 25일 새벽 38선을 넘은 북한군은 순식간에 남한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남하했다. 1개월 만에 대전 시내에 돌입, 8월에는 대구, 마산, 포항까지 육박했다. 임시 수도 부산을 최종 목표로 진격하던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 한국군과 유엔 연합군의 반격에 막혀 9월부터 북으로 패퇴했다.<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567 낙동강 방어선 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1953년 마침내 휴전이 성립됐다. 일제의 식민 통치와 연이은 전쟁으로 대한민국은 초토화되었다. 가옥 60만 채가 파괴되고 전쟁미망인 20만 명, 전쟁고아 10만 명이 생겼다. 공업 시설 45%가 가동 불능상태가 되어 경제도 무너졌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ndex.php?title=%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D%95%9C%EA%B5%AD%EC%82%AC/%ED%98%84%EB%8C%80%EC%82%AC%ED%9A%8C%EC%9D%98_%EB%B0%9C%EB%8B%AC/%EC%8B%9C%EB%A0%A8%EA%B3%BC_%EB%AF%BC%EC%A3%BC%EC%A3%BC%EC%9D%98%EC%9D%98_%EB%B0%9C%EC%A0%84/6%C2%B725%EC%A0%84%EC%9F%81&oldid=198078 |제목=6·25전쟁 |웹사이트=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 }}</ref><br>
당시 안상홍님은 부산에서 새 언약 복음을 전하고 계셨다. 가난하고 피폐한 시국에도 안상홍님은 하나님의 계명을 소중히 지키셨다. 당시 상황을 담은 친필 노트에는 ''"6.25 사변에서도 죽음의 고역, 양산 변내 산중에서도 생활에 굴하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안식일 범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안상홍님은 부산에서 새 언약 복음을 전하고 계셨다. 가난하고 피폐한 시국에도 안상홍님은 하나님의 계명을 소중히 지키셨다. 당시 상황을 담은 친필 노트에는 ''"6.25 사변에서도 죽음의 고역, 양산 변내 산중에서도 생활에 굴하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안식일 범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