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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북쪽 원정'''
*'''Northern Babylon Campaign'''
:왕세자 느부갓네살은 바빌로니아 연대기<ref>고대 바빌로니아 나보나사르 시대에서 파르티아 시대까지의 역사를 쐐기문자로 기록한 일련의 점토판들이다. 현재 바벨론 제국의 형성을 연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ref>(BM. 22047, 대영박물관 소장)에 기록된 바벨론 북쪽 산지 지역에 대한 원정기사에서 처음 언급된다. 바벨론 초대 왕 나보폴라사르는 앗수르를 정복한 후, 아들인 느부갓네살과 함께 하란 북쪽으로 원정을 떠났다. 바벨론이 떠난 레반트 지역에는 멸망한 앗수르 대신 애굽 군대가 주둔하며 지배권을 행사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5장 |제목=역대하 35:20 |저널= |인용문=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ref>
:Crown Prince Nebuchadnezzar is first mentioned in the ''Babylonian Chronicles<ref>고대 바빌로니아 나보나사르 시대에서 파르티아 시대까지의 역사를 쐐기문자로 기록한 일련의 점토판들이다. 현재 바벨론 제국의 형성을 연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ref>'' (BM 22047, housed in the British Museum) in connection with his military campaign in the northern mountainous regions of Babylon. After Nabopolassar, the first king of Babylon, successfully defeated Assyria, he launched a campaign north of Haran with his son, Nebuchadnezzar. While Babylon focused on these northern regions, Egypt seized the opportunity created by the Assyrian fall, deploying its forces in the Levant during the power vacuum.<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5장|제목=역대하 35:20|저널=|인용문=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ref>


*'''시리아 땅 정복, 남 유다 1차 침략'''
*'''Conquest of Syria and the 1st Invasion of Judah'''
[[파일:Babylon-Egypt-Quramati.jpg |섬네일 | 200x200px |쿠라마티 전투 이후 애굽과 바벨론의 점령 지역. 바벨론은 레반트 지역을 놓고 애굽과 대립했다.]]
[[파일:Babylon-Egypt-Quramati.jpg |섬네일 | 200x200px |Egyptian and Babylonian influence after the battle of Quramati: Babylon confronted Egypt over the Levant.]]
:북쪽 정벌을 마친 바벨론은 다시 레반트 지역으로 진출했다. 이에 애굽은 바벨론 군대의 핵심 지역인 키무후(Kimuhu)를 점령했다. 키무후를 상실한 후, 바벨론은 시리아의 도시들(수나디리, 엘람무, 다함무 등)을 정복했고<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9장 |제목=예레미야 49:23-27 |저널= |인용문=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라 바닷가에 슬픔이 있고 평안이 없도다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켰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잡았도다 ...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놓으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살라지리라 }}</ref> [[남 유다 왕국|남 유다]]를 침공해 포로를 사로잡아 가며 영향력을 확대했다('''바벨론 1차 포로'''). 바벨론이 애굽을 몰아내고 시리아와 남 유다 등 레반트 지역을 지배하자 남 유다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의 봉신이 되어 3년간 바벨론에 조공을 바쳤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 |제목=열왕기하 24:1 |저널= |인용문=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ref>
:After completing the northern campaign, Babylon shifted its focus to reclaim control over the Levant. In response, Egypt seized Kimuhu, a strategic region in the heartland of the Babylonian army. Following the loss of Kimuhu, Babylon successfully conquered several Syrian cities, including Sunadiri, Elammu, and Dahammu,<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9장|제목=예레미야 49:23-27|저널=|인용문=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라 바닷가에 슬픔이 있고 평안이 없도다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켰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잡았도다 ...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놓으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살라지리라}}</ref> expanding its influence by invading [[Southern Kingdom of Judah|Judah]] and taking captives in the '''first Babylonian exile'''. Once Babylon had driven out Egypt and secured control over Syria and Judah, King Jehoiakim of Judah became a vassal of Nebuchadnezzar and paid tribute for three years.<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제목=열왕기하 24:1|저널=|인용문=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ref>


*'''갈그미스 전투'''
*'''Battle of Carchemish'''
[[파일:Battle of Carchemish.png |섬네일 |200x200px|《허친슨의 민족 이야기》에 묘사된 갈그미스 전투, 1900년대]]
[[파일:Battle of Carchemish.png |섬네일 |200x200px|''The Battle of Carchemish'', as depicted in ''Hutchinson’s Story of the Nations'' (1900)]]
{{인용문5 |내용= 여호야김 제 사년에 유브라데 하숫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패한 애굽 왕 바로느고의 군대에 대한 말씀이라 ... 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방 백성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로다 ... 내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신하들의 손에 붙이리라 |출처= [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6장 예레미야 46:2, 24-26]}}  
{{인용문5 |내용= This is the message against the army of Pharaoh Neco king of Egypt, which was defeated at Carchemish on the Euphrates River by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in the fourth year of Jehoiakim son of Josiah king of Judah: . . . “The Daughter of Egypt will be put to shame, handed over to the people of the north. . . . I will hand them over to those who seek their lives, to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and his officers.|출처= [https://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Jeremiah%2046%3A2%2C%2024%E2%80%9326&version=NIV Jeremiah 46:2, 24–26]}}  
:레반트 지역에는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쿠라마티(Quramati)에, 애굽 군대가 시리아 국경 지역인 갈그미스(Carchemish)에 군대를 배치하고 대립하고 있었다.<ref>[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Nebuchadnezzar-II "Nebuchadnezzar II,"] ''Encyclopædia Britannica''</ref> 기원전 605년경, 왕세자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로 진격하여 대승을 거두었고('''갈그미스 전투'''), 애굽 군대는 갈그미스 남쪽으로 후퇴하여 하맛에서 다시 싸웠으나 패배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6장 |제목=예레미야 46:13 |저널= |인용문=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와서 애굽 땅을 칠 일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말씀이라 }}</ref> 갈그미스 전투 결과, 바벨론은 애굽이 차지했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일대의 주도권을 획득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 |제목=열왕기하 24:7 |저널= |인용문=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취하였음이더라 }}</ref>
:In the Levant, Nebuchadnezzar’s army was positioned at Quramati, while Egyptian troops fortified themselves at Carchemish on the Syrian border, where they engaged in conflict.<ref>[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Nebuchadnezzar-II "Nebuchadnezzar II,"] ''Encyclopædia Britannica''</ref> Around 605 BC, Crown Prince Nebuchadnezzar advanced toward Carchemish and achieved a decisive victory in the '''Battle of Carchemish'''. The defeated Egyptian forces retreated southward to Hamath, but they were again defeated.<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6장|제목=예레미야 46:13|저널=|인용문=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와서 애굽 땅을 칠 일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말씀이라}}</ref> As a result of the Battle of Carchemish, Babylon gained control of Palestine and Syria, territories previously occupied by Egypt.<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제목=열왕기하 24:7|저널=|인용문=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취하였음이더라}}</ref>


*'''느부갓네살의 즉위와 블레셋 정복'''
*'''Nebuchadnezzar’s Ascension and the Conquest of Philistia'''
:기원전 605년경 나보폴라사르왕이 죽자 왕세자 느부갓네살은 리블라에서 바벨론으로 복귀하여 왕위에 올랐다. 느부갓네살은 즉위 이후 곧바로 아스글론을 점령함으로써 애굽의 영향력 아래 있던 블레셋을 멸망시켰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7장 |제목=예레미야 47:4-7 |저널= |인용문=이는 블레셋 사람을 진멸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바 도와줄 자를 다 끊어버리시는 날이 이름이라 ... 가사가 삭발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멸망되었나니 ...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명정하셨느니라 }}</ref> 또한 하티 지역(Hatti, 오늘날 시리아 지역으로 갈그미스에서 리블라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에 원정을 나가서 레반트 지역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했다. 이때 하티 지역의 모든 왕들이 느부갓네살에게 조공을 바쳤다.<ref>[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neco "Neco,"] <i>Jewish Virtual Library</i></ref>
:After the death of King Nabopolassar around 605 BC, Crown Prince Nebuchadnezzar returned to Babylon from Riblah and ascended to the throne. Immediately following his accession, Nebuchadnezzar captured Ashkelon, effectively destroying Philistia, which had been under Egyptian influence.<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7장|제목=예레미야 47:4-7|저널=|인용문=이는 블레셋 사람을 진멸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바 도와줄 자를 다 끊어버리시는 날이 이름이라 ... 가사가 삭발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멸망되었나니 ...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명정하셨느니라}}</ref> He then launched a campaign into the Hatti region (modern-day Syria, extending from Carchemish to Riblah), ultimately gaining control over the entire Levant. During this time, all the kings of the Hatti region submitted to Nebuchadnezzar and paid tribute.<ref>[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neco "Neco,"] ''Jewish Virtual Library''</ref>


*'''애굽과의 전쟁과 남 유다 2차 침략'''  
*'''War With Egypt and the 2nd Invasion of Judah'''
:기원전 601년경, 느부갓네살은 남진하여 애굽의 국경 지역인 가나안 땅까지 진군했다. 약 1년간의 전쟁은 승자 없이 끝나고 바벨론과 애굽에 큰 피해를 남겼다. 바벨론이 애굽 국경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난 것을 계기로 여호야김은 재위 8년째(B.C. 600년경)에 더 이상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 |제목=열왕기하 24:1 |저널= |인용문=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ref> 애굽은 북진해서 가사(Gaza)를 점령해 블레셋 지역에 대한 지배를 다시 강화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7장 |제목=예레미야 47:1 |저널= |인용문=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ref>
:Around 601 BC, Nebuchadnezzar marched southward toward the Egyptian frontier, reaching the land of Canaan. The ensuing war lasted nearly a year, causing significant damage on both sides but ultimately ending without a decisive victor. Babylon’s failure to secure a clear victory at Egypt’s borders emboldened King Jehoiakim of Judah, who, in the eighth year of his reign (600 BC), stopped paying tribute to Babylon.<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제목=열왕기하 24:1|저널=|인용문=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ref> In response, Egypt advanced northward and captured Gaza, further strengthening its control over Philistia.<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7장|제목=예레미야 47:1|저널=|인용문=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ref>
{{인용문5 |내용= 그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 유다 왕 여호야긴이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 저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또 용사 칠천과 공장과 대장장이 일천 ...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출처=[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 열왕기하 24:10-17]}}  
{{인용문5 |내용= At that time the officers of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advanced on Jerusalem and laid siege to it . . . Jehoiachin king of Judah, his mother, his attendants, his nobles and his officials all surrendered to him. . . . Nebuchadnezzar took Jehoiachin captive to Babylon. He also took from Jerusalem to Babylon the king’s mother, his wives, his officials and the leading men of the land. The king of Babylon also deported to Babylon the entire force of seven thousand fighting men, strong and fit for war, and a thousand craftsmen and artisans. . . . He made Mattaniah, Jehoiachin’s uncle, king in his place and changed his name to Zedekiah.|출처=[https://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2%20Kings%2024%3A10%E2%80%9317&version=NIV 2 Kings 24:10–17]}}  
: 기원전 598년경,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정비한 후 다시 가나안 땅으로 진격했고 남 유다가 조공을 중단한 것을 반란으로 간주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예루살렘성 포위 초반에 여호야김은 죽고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 |제목=열왕기하 24:1-6 |저널= |인용문=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 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ref>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 대신에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시드기야'로 불렀다. 기원전 597년경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 예루살렘 백성, 지도자, 병사, 기술자 등을 '''2차 포로'''로 끌고갔다. 이 일로 남 유다는 군사력을 모두 상실했다.<ref>이창엽, 〈느부갓네살의 강 건너편 지역에 대한 원정과 여호야김의 죽음〉, 《구약논집》 제21권, 한국복음주의구약신학회, 2021, 201쪽, "바벨론 제국은 유다가 온전한 자주국방을 갖춘 나라로서 기능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ref>
: In 598 BC, Nebuchadnezzar assembled his army and marched back into the land of Canaan. He viewed the cessation of tribute from Judah as an act of rebellion and laid siege to Jerusalem. At the start of the siege, King Jehoiakim died, and his son Jehoiachin ascended to the throne.<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제목=열왕기하 24:1-6|저널=|인용문=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 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ref> Nebuchadnezzar then replaced Jehoiachin with Mattaniah, whom he renamed Zedekiah. Around 597 BC, Nebuchadnezzar took Jehoiachin, along with the people of Jerusalem, including leaders, soldiers, and skilled craftsmen, into '''the second exile'''. As a result, Judah lost all its military strength.<ref>이창엽, 〈느부갓네살의 강 건너편 지역에 대한 원정과 여호야김의 죽음〉, 《구약논집》 제21권, 한국복음주의구약신학회, 2021, 201쪽, "바벨론 제국은 유다가 온전한 자주국방을 갖춘 나라로서 기능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ref>


*'''엘람의 반란 진압<ref name=":0" />'''  
*'''Suppression of the Elamite Rebellion<ref name=":0" />'''
:기원전 597년경, 느부갓네살은 유다에서 2차 포로를 끌고 돌아가며 서방 원정을 마쳤다. 이때 남 유다, 에돔, 모압, 압몬, 두로, 시돈은 [[예루살렘]]에서 비밀 회동을 가지며 공조체계를 형성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27장 |제목=예레미야 27:3 |저널= |인용문=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ref> 레반트 지역 국가들 사이에서 바벨론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한 엘람은 기원전 596년경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느부갓네살은 티그리스강을 건너서 엘람을 공격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9장 |제목=예레미야 49:34-38 |저널= |인용문=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되는 활을 꺾을 것이요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이르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의 이르지 아니하는 나라가 없으리라 ...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 위에 내릴 것이며 내가 또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를 진멸하기까지 할것이라 내가 나의 위를 엘람에 베풀고 왕과 족장들을 그곳에서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ref>
:In 597 BC, Nebuchadnezzar completed his western military campaign, taking the second group of captives from Judah. During this time, the nations of Judah, Edom, Moab, Ammon, Tyre, and Sidon secretly met in [[Jerusalem]] and formed an alliance.<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27장|제목=예레미야 27:3|저널=|인용문=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ref> Given the growing anti-Babylonian sentiment among the Levantine nations, Elam rebelled around 596 BC. In response, Nebuchadnezzar crossed the Tigris River and launched an attack on Elam to suppress the revolt.<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9장|제목=예레미야 49:34-38|저널=|인용문=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되는 활을 꺾을 것이요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이르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의 이르지 아니하는 나라가 없으리라 ...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 위에 내릴 것이며 내가 또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를 진멸하기까지 할것이라 내가 나의 위를 엘람에 베풀고 왕과 족장들을 그곳에서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ref>


*'''남 유다의 멸망(3차 침략)'''<ref name=":0">유윤종, 〈느부갓네살 2세: 역사와 전승〉, 《서양고대사연구》 제23권,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08, 46-47쪽</ref>
*'''Fall of Judah (3rd Invasion)'''<ref name=":0">유윤종, 〈느부갓네살 2세: 역사와 전승〉, 《서양고대사연구》 제23권,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08, 46-47쪽</ref>
[[파일:Nebuchadnezzar camp outside Jerusalem. Famine in the city.jpg |섬네일 | 200px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포위. 《Bible Historiale》 삽화, 1372]]
[[파일:Nebuchadnezzar camp outside Jerusalem. Famine in the city.jpg |섬네일 | 200px |''Nebuchadnezzar: Siege of Jerusalem'' from the Illustration of ''Bible Historiale'', 1372]]
:엘람이 바벨론에 대항할 당시 애굽의 [[바로 (파라오)|바로]],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10607001211949 프삼티크 2세]는 즉위 후 남 유다의 종교적 행사에 참석했다. 이것은 바벨론의 점령 아래에 있던 남 유다에게 정치적·군사적인 의미를 띠는 일이었다. 그 무렵 느부갓네살은 서방 원정을 중단하고 있었다. 남 유다의 시드기야왕은 애굽의 지원을 기대했고, 느부갓네살과의 물리적인 거리도 멀어졌다고 판단했다. 이에 바벨론에 연례적으로 조공을 바치던 것을 중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 |제목=열왕기하 24:20|저널= |인용문=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ref> 기원전 588년경,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애굽에서는 남 유다에 지원을 약속했던 프삼티크 2세가 죽고, 호브라<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4장 |제목=예레미야 44:30 |저널= |인용문=보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를 그 원수 곧 그 생명을 찾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인 것 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를 그 원수들 곧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였느니라 하시니라 }}</ref>(와히브레, 아프리에스)가 바로가 되었다. 예루살렘이 포위됐을 때 애굽이 팔레스타인으로 군대를 보냈으나 바벨론이 일시적으로 포위를 풀고 후퇴하면서 도로 군대를 철수했다. 바벨론 군대는 그 틈을 타 다시 포위망을 구축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37장 |제목=예레미야 37:7-11 |저널= |인용문=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 왕에게 이르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르리라 }}</ref> 결국 기원전 586년경에 예루살렘이 함락되며 남 유다는 멸망했다. 시드기야는 리블라에 있는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갔고 백성 대부분이 포로로 끌려갔다('''바벨론''' '''3차 포로''').
:While Babylon was engaged in dealing with Elam,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Psamtik-II Psamtik II], the [[Pharaoh]] of Egypt, attended religious events in Judah. This move was politically and militarily significant for Judah, which was under Babylonian control. Around the same time, Nebuchadnezzar took a break from his western campaign. Zedekiah, the king of Judah, believing in potential Egyptian support and the distance from Babylon, stopped paying the annual tribute and rebelled.<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4장|제목=열왕기하 24:20|저널=|인용문=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ref> In 588 BC, Nebuchadnezzar marched toward Jerusalem with his army to suppress the rebellion. Meanwhile, Psamtik II, who had promised support to Judah, died, and Hophra<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4장|제목=예레미야 44:30|저널=|인용문=보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를 그 원수 곧 그 생명을 찾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인 것 같이 애굽 왕 바로 호브라를 그 원수들 곧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였느니라 하시니라}}</ref> (Wahibre, also known as Apries) succeeded him as Pharaoh. As the siege of Jerusalem began, Egypt sent an army to Palestine, but Babylon temporarily lifted the siege, causing Egypt to withdraw its forces. Taking advantage of this, Babylon resumed the siege,<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37장|제목=예레미야 37:7-11|저널=|인용문=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 왕에게 이르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르리라}}</ref> and by 586 BC, Jerusalem fell, leading to the destruction of Judah. Zedekiah was captured and taken to Nebuchadnezzar in Riblah, while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was exiled in what became known as the '''third Babylonian exile'''.
{{인용문5 |내용=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년 시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의 제 십일년 사월 구일에 성이 함락되니라 ...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출처= [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39장 예레미야 39:1-8]}}     
{{인용문5 |내용= This is how Jerusalem was taken: In the ninth year of Zedekiah king of Judah, in the tenth month,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marched against Jerusalem with his whole army and laid siege to it. And on the ninth day of the fourth month of Zedekiah’s eleventh year, the city wall was broken through. . . . But the Babylonian army pursued them and overtook Zedekiah in the plains of Jericho. They captured him and took him to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where he pronounced sentence on him. . . . The Babylonians set fire to the royal palace and the houses of the people and broke down the walls of Jerusalem.|출처= [https://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Jeremiah%2039%3A1%E2%80%938&version=NIV Jeremiah 39:1–8]}}     
:이때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예레미야]]는 남 유다 백성들에게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권고하다가 어려움을 겪었는데, 느부갓네살이 이를 듣고 예레미야를 포로에서 풀어주며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그다랴와 함께 지내게 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39장 |제목=예레미야 39:11-14 |저널= |인용문=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대로 행하라 이에 시위대장 느부사라단과 환관장 느부사스반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보내어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서 취하여 내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붙여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중에 거하니라 }}</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0장 |제목=예레미야 40:1-6 |저널= |인용문=시위대장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히 여기거든 오라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선히 여기는대로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 왕이 유다 성읍들의 총독으로 세우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중에 거하거나 너의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시위대장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ref>
:이때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예레미야]]는 남 유다 백성들에게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권고하다가 어려움을 겪었는데, 느부갓네살이 이를 듣고 예레미야를 포로에서 풀어주며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그다랴와 함께 지내게 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39장 |제목=예레미야 39:11-14 |저널= |인용문=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대로 행하라 이에 시위대장 느부사라단과 환관장 느부사스반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보내어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서 취하여 내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붙여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중에 거하니라 }}</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40장 |제목=예레미야 40:1-6 |저널= |인용문=시위대장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히 여기거든 오라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선히 여기는대로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 왕이 유다 성읍들의 총독으로 세우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중에 거하거나 너의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시위대장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