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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시대===
===히스기야 시대===
[[File:DESTRUCTION OF SENNACHERIB'S HOST..jpg|DESTRUCTION_OF_SENNACHERIB'S_HOST.|섬네일|200px|앗수르 군사 18만 5천을 친 하나님의 천사]]
[[File:DESTRUCTION OF SENNACHERIB'S HOST..jpg|DESTRUCTION_OF_SENNACHERIB'S_HOST.|섬네일|200px|앗수르 군사 18만 5천을 친 하나님의 천사]]
‘재앙이 넘어간다’는 유월절의 약속은 출애굽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로부터 약 800년이 지난 히스기야 시대에도 유월절의 효력이 드러났다. 히스기야는 남 유다 왕국 제13대 왕이다. 이스라엘 통일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된 이후 유월절은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히스기야는 즉위하자마자 선지자 이사야의 권면으로 파괴된 성전을 수리하고<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29장 |제목=역대하 29:2–3 |인용문=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ref>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0장 |제목=역대하 30:2 |인용문= 왕이 방백들과 예루살렘 온 회중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이월에 유월절을 지키려 하였으니}}</ref> 남 유다뿐 아니라 북 이스라엘에도 보발꾼들을 보내 예루살렘에 와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권했다. 북 이스라엘은 초대 왕 여로보암이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한 이래<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상#12장 |제목=열왕기상 12:25–29 |인용문=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ref> 250여 년간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 유월절을 알지 못한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발꾼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0장 |제목=역대하 30:1–10 |인용문=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 보발꾼들이 왕과 방백들의 편지를 받아가지고 왕의 명을 좇아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러 다니며 전하니 ...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에 두루 다녀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저희를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ref> 결국 남 유다 백성과 겸손하게 보발꾼의 말을 받아들인 북 이스라엘 백성 몇 명만 예루살렘으로 모여 유월절을 지켰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0장 |제목=역대하 30:11–12 |인용문=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하나님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ref><br>
'재앙이 넘어간다’는 유월절의 약속은 출애굽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로부터 약 800년이 지난 히스기야 시대에도 유월절의 효력이 드러났다. 히스기야는 남 유다 왕국 제13대 왕이다. 이스라엘 통일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된 이후 유월절은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히스기야는 즉위하자마자 선지자 이사야의 권면으로 파괴된 성전을 수리하고<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29장 |제목=역대하 29:2–3 |인용문=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ref>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0장 |제목=역대하 30:2 |인용문= 왕이 방백들과 예루살렘 온 회중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이월에 유월절을 지키려 하였으니}}</ref> 남 유다뿐 아니라 북 이스라엘에도 보발꾼들을 보내 예루살렘에 와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권했다. 북 이스라엘은 초대 왕 여로보암이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한 이래<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상#12장 |제목=열왕기상 12:25–29 |인용문=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ref> 250여 년간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 유월절을 알지 못한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발꾼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0장 |제목=역대하 30:1–10 |인용문=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 보발꾼들이 왕과 방백들의 편지를 받아가지고 왕의 명을 좇아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러 다니며 전하니 ...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에 두루 다녀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저희를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ref> 결국 남 유다 백성과 겸손하게 보발꾼의 말을 받아들인 북 이스라엘 백성 몇 명만 예루살렘으로 모여 유월절을 지켰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0장 |제목=역대하 30:11–12 |인용문=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하나님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ref><br>
3년 후 아시리아(이하 앗수르) 군대가 북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성을 에워쌌다. 앗수르는 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 일대를 정복한 강대국이었다. 포위 3년 만에 사마리아는 함락되어 수백만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포로로 잡혀갔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7장 |제목=열왕기하 17:4–6 |인용문=저가 애굽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 저를 옥에 금고하여 두고 올라와서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3년을 에워쌌더라 호세아 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ref> 기원전 721년경, 북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했다. 열왕기하에서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근본적 원인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3년 후 아시리아(이하 앗수르) 군대가 북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성을 에워쌌다. 앗수르는 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 일대를 정복한 강대국이었다. 포위 3년 만에 사마리아는 함락되어 수백만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포로로 잡혀갔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7장 |제목=열왕기하 17:4–6 |인용문=저가 애굽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 저를 옥에 금고하여 두고 올라와서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3년을 에워쌌더라 호세아 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ref> 기원전 721년경, 북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했다. 열왕기하에서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근본적 원인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용문5 |내용=히스기야왕 4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7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3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6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9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출처=[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8장 열왕기하 18:9–12]}}
{{인용문5 |내용=히스기야왕 4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7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3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6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9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출처=[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8장 열왕기하 18:9–12]}}
[[File:Map of Assyria.png|Map_of_Assyria|섬네일|300px|왼쪽|유다 왕국을 둘러싼 앗수르의 영토]]
[[File:Map of Assyria.png|Map_of_Assyria|섬네일|300px|왼쪽|유다 왕국을 둘러싼 앗수르의 영토]]
히스기야 제14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군사를 이끌고 남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들을 점령했다. 포위망은 남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좁혀왔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8장 |제목=열왕기하 18:13–17 |인용문=히스기야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ref><ref>{{인용 |url= |제목=The Biblical World: An Illustrated Atlas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황소자리 |날짜= |연도= |저자=Jean-Pierre Isbouts |저자링크= |저자2=National Geographic Society |저자링크2= |쪽=221 |시리즈= |언어=한국어 |번역제목=성서 그리고 역사 |isbn=978–89–91508–68–2 |인용문= 이제 유다 왕국은 철저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산헤립은 천천히 예루살렘을 압박해 들어갔다. 예루살렘 주변을 둘러싼 성채들이 차례로 함락당했다. 유다 왕국의 요새화된 성읍들이 모두 점령된 것이다(열왕기 하 18:13). 산헤립의 육각 점토 기둥 기록에도 ‘히즈키야가 내게 복종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강력한 도시, 성채, 마을 46곳을 포위하였고 흙 경사로와 성벽 파괴용 해머를 이용한 후 보병으로 공격해 정복하였다.’라는 설명이 등장한다.}}</ref> 산헤립과 그의 신복들은 힘없는 남 유다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비아냥거렸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2장 |제목=역대하 32:10–11 |인용문=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로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ref><br>
히스기야 제14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군사를 이끌고 남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들을 점령했다. 포위망은 남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좁혀왔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8장 |제목=열왕기하 18:13–17 |인용문=히스기야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ref><ref>{{인용 |url= |제목=The Biblical World: An Illustrated Atlas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황소자리 |날짜= |연도= |저자=Jean-Pierre Isbouts |저자링크= |저자2=National Geographic Society |저자링크2= |쪽=221 |시리즈= |언어=한국어 |번역제목=성서 그리고 역사 |isbn=978–89–91508–68–2 |인용문= 이제 유다 왕국은 철저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산헤립은 천천히 예루살렘을 압박해 들어갔다. 예루살렘 주변을 둘러싼 성채들이 차례로 함락당했다. 유다 왕국의 요새화된 성읍들이 모두 점령된 것이다(열왕기 하 18:13). 산헤립의 육각 점토 기둥 기록에도 '히즈키야가 내게 복종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강력한 도시, 성채, 마을 46곳을 포위하였고 흙 경사로와 성벽 파괴용 해머를 이용한 후 보병으로 공격해 정복하였다.’라는 설명이 등장한다.}}</ref> 산헤립과 그의 신복들은 힘없는 남 유다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비아냥거렸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2장 |제목=역대하 32:10–11 |인용문=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로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ref><br>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장로들을 보내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은 이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화살 하나 쏘지 못할 것이다. 방패 든 군인들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며 성 주변에 토성을 쌓지 못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갈 것이다”라며 구원을 약속하셨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9장 |제목=열왕기하 19:32–33 |인용문=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저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ref> 그 말씀대로 밤사이 앗수르 대군은 진멸되었다.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장로들을 보내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은 이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화살 하나 쏘지 못할 것이다. 방패 든 군인들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며 성 주변에 토성을 쌓지 못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갈 것이다”라며 구원을 약속하셨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9장 |제목=열왕기하 19:32–33 |인용문=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저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ref> 그 말씀대로 밤사이 앗수르 대군은 진멸되었다.
{{인용문5 |내용=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만 5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출처=[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9장 열왕기하 19:34–35]}}
{{인용문5 |내용=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만 5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출처=[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9장 열왕기하 19:3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