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두 판 사이의 차이

Sally (토론 | 기여)
Sally (토론 | 기여)
119번째 줄: 119번째 줄:
*'''광야 시대'''
*'''광야 시대'''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은 다음 해 1월 1일 [[성소 (성막)|성막]]을 완성하고,<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출애굽기#40장|제목=출애굽기 40:17|인용문=제 이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ref> 그달 14일 시내 광야에서 두 번째 유월절을 지켰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민수기#9장|제목=민수기 9:1-5|인용문=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 ... 그들이 정월 십사 일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행하였더라}}</ref> 하나님은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거나 먼 여행 중에 있어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사람에게는 2월 14일 저녁에 동일한 규례대로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민수기#9장|제목=민수기 9:9-13|인용문=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찌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사람이 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니}}</ref><br>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은 다음 해 1월 1일 [[성소 (성막)|성막]]을 완성하고,<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출애굽기#40장|제목=출애굽기 40:17|인용문=제 이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ref> 그달 14일 시내 광야에서 두 번째 유월절을 지켰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민수기#9장|제목=민수기 9:1-5|인용문=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 ... 그들이 정월 십사 일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행하였더라}}</ref> 하나님은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거나 먼 여행 중에 있어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사람에게는 2월 14일 저녁에 동일한 규례대로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민수기#9장|제목=민수기 9:9-13|인용문=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찌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사람이 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니}}</ref><br>
그러나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두 번째 유월절을 지킨 후 광야 길을 걷는 38년 동안 유월절을 지킨 기록이 없다. 광야 시대 말기,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 앞에 이른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다.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남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었고<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민수기#14장|제목=민수기 14:29-30|인용문=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ref>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여호수아#5장|제목=여호수아 5:2-5|인용문=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ref> 유월절은 할례를 받은 사람만 지킬 수 있으므로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간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의미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출애굽기#12장|제목=출애굽기 12:48|인용문=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ref> 할례를 행한 후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민족은 그 해에 가나안에 입성했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여호수아#5장|제목=여호수아 5:10-12|인용문=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달 십사 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ref>
그러나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두 번째 유월절을 지킨 후 광야 길을 걷는 38년 동안 유월절을 지킨 기록이 없다. 광야 시대 말기,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 앞에 이른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셨다.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남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었고<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민수기#14장|제목=민수기 14:29-30|인용문=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ref>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여호수아#5장|제목=여호수아 5:2-5|인용문=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ref> 유월절은 할례를 받은 사람만 지킬 수 있으므로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간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의미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출애굽기#12장|제목=출애굽기 12:48|인용문=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ref> 할례를 행한 후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민족은 그 해에 가나안에 입성했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여호수아#5장|제목=여호수아 5:10-12|인용문=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달 십사 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ref>


*'''히스기야 시대'''
*'''히스기야 시대'''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역사는 모세 시대로부터 약 800년이 지난 히스기야 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히스기야는 남 유다 왕국의 제13대 왕으로, 당시 이스라엘은 남 유다 왕국과 북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돼 있었다. <br>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역사는 모세 시대로부터 약 800년이 지난 히스기야 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히스기야는 남 유다 왕국의 제13대 왕으로, 당시 이스라엘은 남 유다 왕국과 북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돼 있었다. <br>
히스기야왕은 즉위하자마자 국가의 안정을 얻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히스기야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전역에 보발꾼들을 보내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오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왕국 분열 이후 약 250년 동안 유월절을 지켜본 적이 없던 대다수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발꾼들을 조롱하며 비웃었다. 결국 남 유다 백성들만이 예루살렘에 온 소수의 북 이스라엘 백성과 유월절을 지켰다.<ref name="히스기야 유월절">{{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0장|제목=역대하 30:1-12|인용문=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에 두루 다녀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저희를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하나님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ref> 유월절을 지킨 백성들은 그동안 알지 못하고 섬기던 [[우상]]과 다른 신에게 제사하는 제단을 없앴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1장|제목=역대하 31:1|인용문=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ref><br>
히스기야왕은 즉위하자마자 국가의 안정을 얻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히스기야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전역에 보발꾼들을 보내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오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왕국 분열 이후 약 250년 동안 유월절을 지켜본 적이 없던 대다수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발꾼들을 조롱하며 비웃었다. 결국 남 유다 백성들만이 예루살렘에 온 소수의 북 이스라엘 백성과 유월절을 지켰다.<ref name="히스기야 유월절">{{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0장|제목=역대하 30:1-12|인용문=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에 두루 다녀 스불론까지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저희를 조롱하며 비웃었더라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이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하나님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ref> 유월절을 지킨 백성들은 그동안 알지 못하고 섬기던 우상과 다른 신에게 제사하는 제단을 없앴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역대하#31장|제목=역대하 31:1|인용문=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ref><br>
3년 후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아시리아)가 북 이스라엘을 침략해 수도 사마리아를 에워쌌고, 포위 3년 만에 함락시켰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던 북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경 완전히 멸망했다.<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07419&cid=62097&categoryId=62097  |제목=북이스라엘의 역사 |웹사이트= |저널=이스라엘사 |출판사= |날짜= |연도=|저자=최창모 |쪽= |시리즈= |isbn= |인용문=기원전 925년 솔로몬 사후 등극한 여로보암 왕으로부터 721년 아시리아로부터 멸망당할 때 마지막 왕인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을 유지해 온 북이스라엘 왕조는 모두 19명의 왕을 낳았다}}</ref> 성경은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근본적 원인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8장|제목=열왕기하 18:9-12|인용문=히스기야왕 4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7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3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6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9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ref><br>
3년 후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아시리아)가 북 이스라엘을 침략해 수도 사마리아를 에워쌌고, 포위 3년 만에 함락시켰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던 북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경 완전히 멸망했다.<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07419&cid=62097&categoryId=62097  |제목=북이스라엘의 역사 |웹사이트= |저널=이스라엘사 |출판사= |날짜= |연도=|저자=최창모 |쪽= |시리즈= |isbn= |인용문=기원전 925년 솔로몬 사후 등극한 여로보암 왕으로부터 721년 아시리아로부터 멸망당할 때 마지막 왕인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을 유지해 온 북이스라엘 왕조는 모두 19명의 왕을 낳았다}}</ref> 성경은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근본적 원인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8장|제목=열왕기하 18:9-12|인용문=히스기야왕 4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7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3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6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9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ref><br>
히스기야 제14년, 앗수르 군대가 남 유다를 침략해 여러 성읍을 정복하고 포위망을 수도 예루살렘으로 좁혀왔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지킨 남 유다에 구원을 약속했고,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사들을 치게 하셨다. 하룻밤 사이에 군사 18만 5000명이 죽고 앗수르군은 퇴각했다.<ref name="남 유다 구원">{{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9장|제목=열왕기하 19:30-35|인용문=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저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 쏘지 못하며 ...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만 5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ref> 남 유다는 유월절에 담긴 약속대로 재앙에서 보호받고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히스기야 제14년, 앗수르 군대가 남 유다를 침략해 여러 성읍을 정복하고 포위망을 수도 예루살렘으로 좁혀왔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지킨 남 유다에 구원을 약속했고,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사들을 치게 하셨다. 하룻밤 사이에 군사 18만 5000명이 죽고 앗수르군은 퇴각했다.<ref name="남 유다 구원">{{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9장|제목=열왕기하 19:30-35|인용문=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저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살을 쏘지 못하며 ...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만 5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ref> 남 유다는 유월절에 담긴 약속대로 재앙에서 보호받고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