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재림 시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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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시기와 무화과나무 비유==
==재림 시기와 무화과나무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재림 시기와 징조를 질문했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마태복음#24장|제목=마태복음 24:3|인용문=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ref> 예수님은 재림의 징조를 설명하며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재림 시기와 징조를 질문했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마태복음#24장|제목=마태복음 24:3|인용문=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ref> 예수님은 재림의 징조를 설명하며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인용문5 |내용=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출처=[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마태복음#24장 마태복음 24:30–33]}}
{{인용문5 |내용=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출처=[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마태복음#24장 마태복음 24:30–33]}}
예수님은 다시 올 때 구름을 타고 와서 성도들을 모으신다. 구름을 타고 온다는 말씀은 당시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재림 모습| 사람의 모습]]으로 재림하실 것을 의미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재림 시기에 관한 예언으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 인자 즉 [[재림 예수님 (재림 그리스도)|재림 그리스도]]가 임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다시 올 때 구름을 타고 와서 성도들을 모으신다. 구름을 타고 온다는 말씀은 당시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재림 모습| 사람의 모습]]으로 재림하실 것을 의미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재림 시기에 관한 예언으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 인자 즉 [[재림 예수님 (재림 그리스도)|재림 그리스도]]가 임한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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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대로 기원후 70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로마 군대에 포위되어 멸망했다. 그런데 이 예언에는 이스라엘의 회복도 암시되어 있다. 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21장 24절에는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라고 나온다.<ref>{{웹 인용 |url=http://www.holybible.or.kr/B_HDB/cgi/bibleftxt.php?VR=10&CI=10773&CV=99 |제목=누가복음 21:24 |저널=현대인의성경 |인용문=예루살렘은 이방인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ref> 실제로 이스라엘 땅은 로마, 비잔티움, 이슬람, 십자군을 거쳐 다시 이슬람 세력인 맘루크와 오스만 튀르크가 지배했다.<ref>{{인용 |url=https://www.joongang.co.kr/article/22620410#home |제목=갖은 박해에도 선진국 반열···건국 자체가 기적인 이 나라 |웹사이트= |저널=중앙일보 |출판사= |날짜=2018. 5. 14. |연도= |저자= |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 |인용문= 유대인이 추방된 뒤 이스라엘 땅은 로마•비잔티움•무슬림•십자군을 거쳐 다시 무슬림 세력인 맘루크와 오스만 튀르크가 지배했다.}}</ref> 그러나 이방인의 시대가 끝나면 이스라엘 땅은 유대인들에게 회복된다.
예언대로 기원후 70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로마 군대에 포위되어 멸망했다. 그런데 이 예언에는 이스라엘의 회복도 암시되어 있다. 현대인의성경 누가복음 21장 24절에는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라고 나온다.<ref>{{웹 인용 |url=http://www.holybible.or.kr/B_HDB/cgi/bibleftxt.php?VR=10&CI=10773&CV=99 |제목=누가복음 21:24 |저널=현대인의성경 |인용문=예루살렘은 이방인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ref> 실제로 이스라엘 땅은 로마, 비잔티움, 이슬람, 십자군을 거쳐 다시 이슬람 세력인 맘루크와 오스만 튀르크가 지배했다.<ref>{{인용 |url=https://www.joongang.co.kr/article/22620410#home |제목=갖은 박해에도 선진국 반열···건국 자체가 기적인 이 나라 |웹사이트= |저널=중앙일보 |출판사= |날짜=2018. 5. 14. |연도= |저자= |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 |인용문= 유대인이 추방된 뒤 이스라엘 땅은 로마•비잔티움•무슬림•십자군을 거쳐 다시 무슬림 세력인 맘루크와 오스만 튀르크가 지배했다.}}</ref> 그러나 이방인의 시대가 끝나면 이스라엘 땅은 유대인들에게 회복된다.


===이스라엘 멸망<ref>{{인용 |url= |제목=요세푸스 3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생명의말씀사 |날짜= |연도= |저자=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04-06007-9 |인용문=}}</ref>===
===이스라엘 멸망<ref>{{인용 |url= |제목=요세푸스 3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생명의말씀사 |날짜= |연도= |저자=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04060079 |인용문=}}</ref>===
[[File:Roberts Siege and Destruction of Jerusalem.jpg|섬네일|300px|로마 군대의 포위로 파괴된 예루살렘.<br>
[[File:Roberts Siege and Destruction of Jerusalem.jpg|섬네일|300px|로마 군대의 포위로 파괴된 예루살렘.<br>
데이비드 로버트(David Roberts), 1850]]
데이비드 로버트(David Roberts), 1850]]
로마 황제 네로는 이스라엘 전역에 확산된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A%B7%B8%EB%A6%AC%EC%8A%A4%EB%8F%84%EA%B5%90%EC%9D%98_%EC%84%B1%EB%A6%BD/%EC%9B%90%EC%88%98%EC%A0%95_%EB%A1%9C%EB%A7%88%EC%9D%98_%EB%B0%9C%EC%A0%84#%EB%B2%A0%EC%8A%A4%ED%8C%8C%EC%8B%9C%EC%95%84%EB%88%84%EC%8A%A4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이스라엘에 보냈다. 베스파시아누스 군대는 이스라엘 주요 요새를 함락시키고 68년 예루살렘으로 진군했다. 예루살렘 공격만 앞두고 있을 때 로마에서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A%B7%B8%EB%A6%AC%EC%8A%A4%EB%8F%84%EA%B5%90%EC%9D%98_%EC%84%B1%EB%A6%BD/%EC%9B%90%EC%88%98%EC%A0%95_%EB%A1%9C%EB%A7%88%EC%9D%98_%EB%B0%9C%EC%A0%84#%EB%84%A4%EB%A1%9C 네로]의 자살 소식이 들렸다. 새 황제로 추대된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로 돌아갔다. 69년에는 그의 아들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A%B7%B8%EB%A6%AC%EC%8A%A4%EB%8F%84%EA%B5%90%EC%9D%98_%EC%84%B1%EB%A6%BD/%EC%9B%90%EC%88%98%EC%A0%95_%EB%A1%9C%EB%A7%88%EC%9D%98_%EB%B0%9C%EC%A0%84#%ED%8B%B0%ED%88%AC%EC%8A%A4 티투스]가 예루살렘 공략을 재개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둘러싸는 포위용 성벽을 쌓아 성의 모든 출구를 봉쇄하고 성안 유대인들을 아사시키는 전략을 세웠다. 고립된 예루살렘 성안 백성들은 굶주려 죽어갔다. 포위 넉 달째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안으로 돌격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유대인을 죽였다.<ref>{{인용 |url= |제목=예루살렘 전기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시공사 |날짜= |연도= |저자=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35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527-6550-5 |인용문=기원후 70년 7월 하순, 유대인 달력으로 압<sup>Ab</sup>월 8일 예루살렘을 4달째 포위하고 있던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sup>Vespasian</sup>의 아들 티투스<sup>Titus</sup>는 전 군대에게 새벽 시각 성전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ref> 도시와 성전이 불타고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졌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마태복음#24장 |제목=마태복음 24:1–2 |인용문=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ref><br>   
로마 황제 네로는 이스라엘 전역에 확산된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A%B7%B8%EB%A6%AC%EC%8A%A4%EB%8F%84%EA%B5%90%EC%9D%98_%EC%84%B1%EB%A6%BD/%EC%9B%90%EC%88%98%EC%A0%95_%EB%A1%9C%EB%A7%88%EC%9D%98_%EB%B0%9C%EC%A0%84#%EB%B2%A0%EC%8A%A4%ED%8C%8C%EC%8B%9C%EC%95%84%EB%88%84%EC%8A%A4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이스라엘에 보냈다. 베스파시아누스 군대는 이스라엘 주요 요새를 함락시키고 68년 예루살렘으로 진군했다. 예루살렘 공격만 앞두고 있을 때 로마에서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A%B7%B8%EB%A6%AC%EC%8A%A4%EB%8F%84%EA%B5%90%EC%9D%98_%EC%84%B1%EB%A6%BD/%EC%9B%90%EC%88%98%EC%A0%95_%EB%A1%9C%EB%A7%88%EC%9D%98_%EB%B0%9C%EC%A0%84#%EB%84%A4%EB%A1%9C 네로]의 자살 소식이 들렸다. 새 황제로 추대된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로 돌아갔다. 69년에는 그의 아들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A%B7%B8%EB%A6%AC%EC%8A%A4%EB%8F%84%EA%B5%90%EC%9D%98_%EC%84%B1%EB%A6%BD/%EC%9B%90%EC%88%98%EC%A0%95_%EB%A1%9C%EB%A7%88%EC%9D%98_%EB%B0%9C%EC%A0%84#%ED%8B%B0%ED%88%AC%EC%8A%A4 티투스]가 예루살렘 공략을 재개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둘러싸는 포위용 성벽을 쌓아 성의 모든 출구를 봉쇄하고 성안 유대인들을 아사시키는 전략을 세웠다. 고립된 예루살렘 성안 백성들은 굶주려 죽어갔다. 포위 넉 달째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안으로 돌격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유대인을 죽였다.<ref>{{인용 |url= |제목=예루살렘 전기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시공사 |날짜= |연도= |저자=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35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52765505 |인용문=기원후 70년 7월 하순, 유대인 달력으로 압<sup>Ab</sup>월 8일 예루살렘을 4달째 포위하고 있던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sup>Vespasian</sup>의 아들 티투스<sup>Titus</sup>는 전 군대에게 새벽 시각 성전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ref> 도시와 성전이 불타고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졌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마태복음#24장 |제목=마태복음 24:1–2 |인용문=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ref><br>   
70년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예루살렘 포위 기간 사망한 유대인은 집계된 수만 110만 명, 노예로 끌려간 유대인은 9만 7000명이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간다''는 예언대로였다.
70년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예루살렘 포위 기간 사망한 유대인은 집계된 수만 110만 명, 노예로 끌려간 유대인은 9만 7000명이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간다''는 예언대로였다.


===이스라엘 건국===
===이스라엘 건국===
[[File:Declaration of State of Israel 1948 1.jpg|Declaration_of_State_of_Israel_1948_1|섬네일|px|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하는 이스라엘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
[[File:Declaration of State of Israel 1948 1.jpg|Declaration_of_State_of_Israel_1948_1|섬네일|px|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하는 이스라엘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
이스라엘 멸망 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추방되어 나라를 잃고 유럽과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그중 이스라엘이 회복할 예언<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30장 |제목=예레미야 30:3 |인용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50장 |제목=예레미야 50:4–5 |인용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그와 함께 유다 자손이 돌아오되 그들이 울며 그 길을 행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어버리지 아니할 영영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하리라}}</ref>을 믿은 유대인들은 예언이 성취될 날을 기다리며 고향 예루살렘을 잊지 않았다.<ref>{{인용 |url= |제목=예루살렘 전기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시공사 |날짜= |연도= |저자=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251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527-6550-5 |인용문=예루살렘에 대한 유대인들의 갈망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후 수 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어디에서 살든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져 우리 시대에 곧 성전이 재건되기를.” ... 유월절 저녁식사는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갈 때는, 폐허가 된 도시를 흘끗 보면서 옷을 찢는 의식을 개발해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사는 유대인들도 심판의 날에 가장 먼저 일어날 수 있도록 성전 가까운 곳에 묻히기를 원했다.}}</ref> 19세기 말에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에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시오니즘]](Zionism, 시온주의)을 일으켰다. 실제 국가 건설의 꿈을 안고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는 유대인들도 나타났다.<ref>{{인용 |url=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2/2017121201961.html |제목= 피로 얼룩진 신성한 땅, 예루살렘|웹사이트= |저널=조선일보 |출판사= |날짜=2017. 12. 26. |연도= |저자= |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 |인용문=유대인들은 유럽 각지에 흩어져 정착했지만, 여기서도 멸시와 탄압을 피하지 못했다. ... 이런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우리는 신에 의해 선택된 민족이며 언젠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19세기 무렵 이를 현실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 '시오니즘(Zionism·예루살렘 중심부에 성지가 있는 언덕 시온(Zion)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으로도 불린 이 운동을 펼치던 유대인들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민족국가를 세울 기회가 되었다. 오스만제국과 전쟁을 벌이던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1917년 영국 국적의 유대인 로드쉴드에게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할 것을 약속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 '밸푸어 선언' 이후 영국은 유대인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했고,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했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는 유대인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ref><br>
이스라엘 멸망 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추방되어 나라를 잃고 유럽과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았다. 그중 이스라엘이 회복할 예언<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30장 |제목=예레미야 30:3 |인용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50장 |제목=예레미야 50:4–5 |인용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그와 함께 유다 자손이 돌아오되 그들이 울며 그 길을 행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어버리지 아니할 영영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하리라}}</ref>을 믿은 유대인들은 예언이 성취될 날을 기다리며 고향 예루살렘을 잊지 않았다.<ref>{{인용 |url= |제목=예루살렘 전기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시공사 |날짜= |연도= |저자=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251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52765505 |인용문=예루살렘에 대한 유대인들의 갈망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후 수 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어디에서 살든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져 우리 시대에 곧 성전이 재건되기를.” ... 유월절 저녁식사는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갈 때는, 폐허가 된 도시를 흘끗 보면서 옷을 찢는 의식을 개발해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사는 유대인들도 심판의 날에 가장 먼저 일어날 수 있도록 성전 가까운 곳에 묻히기를 원했다.}}</ref> 19세기 말에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에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시오니즘]](Zionism, 시온주의)을 일으켰다. 실제 국가 건설의 꿈을 안고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는 유대인들도 나타났다.<ref>{{인용 |url=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2/12/2017121201961.html |제목= 피로 얼룩진 신성한 땅, 예루살렘|웹사이트= |저널=조선일보 |출판사= |날짜=2017. 12. 26. |연도= |저자= |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 |인용문=유대인들은 유럽 각지에 흩어져 정착했지만, 여기서도 멸시와 탄압을 피하지 못했다. ... 이런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우리는 신에 의해 선택된 민족이며 언젠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19세기 무렵 이를 현실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 '시오니즘(Zionism·예루살렘 중심부에 성지가 있는 언덕 시온(Zion)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으로도 불린 이 운동을 펼치던 유대인들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민족국가를 세울 기회가 되었다. 오스만제국과 전쟁을 벌이던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1917년 영국 국적의 유대인 로드쉴드에게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할 것을 약속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 '밸푸어 선언' 이후 영국은 유대인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했고,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했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는 유대인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ref><br>
이러한 시기에 유럽의 유대인에게 세계 역사상 최대 대학살이 일어났다. 1933년부터 시작해서 1945년에 끝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다. 12년 동안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 유럽 15개국에서 어린이 150만을 포함한 유대인 600만 명이 죽었다. 강제 노동과 기아, 질병으로 죽거나 총살 또는 교수대에 달렸고, 가스실에서 집단 학살됐다.<ref>{{웹 인용 |url=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ko/article/introduction-to-the-holocaust |제목=홀로코스트와 나치 박해로 인한 피해자 수에 대한 기록 |웹사이트=홀로코스트 백과사전|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 }}</ref><br>
이러한 시기에 유럽의 유대인에게 세계 역사상 최대 대학살이 일어났다. 1933년부터 시작해서 1945년에 끝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다. 12년 동안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 유럽 15개국에서 어린이 150만을 포함한 유대인 600만 명이 죽었다. 강제 노동과 기아, 질병으로 죽거나 총살 또는 교수대에 달렸고, 가스실에서 집단 학살됐다.<ref>{{웹 인용 |url=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ko/article/introduction-to-the-holocaust |제목=홀로코스트와 나치 박해로 인한 피해자 수에 대한 기록 |웹사이트=홀로코스트 백과사전|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 }}</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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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D%98%84%EB%8C%80_%EC%84%B8%EA%B3%84%EC%9D%98_%EC%83%88_%EC%A7%88%EC%84%9C/%EC%84%B8%EA%B3%84%EB%A5%BC_%EB%92%A4%ED%9D%94%EB%93%A0_%EC%84%B8%EA%B3%84%EB%8C%80%EC%A0%84/%EC%A0%9C2%EC%B0%A8_%EC%84%B8%EA%B3%84%EB%8C%80%EC%A0%84#%EC%A0%9C2%EC%B0%A8_%EC%84%B8%EA%B3%84%EB%8C%80%EC%A0%84%E3%80%94%E6%A7%AA%E8%AA%AA%E3%80%95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 독일이 패배함으로 유대인 학살도 멈췄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상의 땅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했다.<ref>{{웹 인용 |url= 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070514/8441346/1|제목=[책갈피 속의 오늘]1948년 이스라엘 건국 |웹사이트= |저널=동아일보 |출판사= |날짜=2007. 5. 14.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이스라엘 땅은 유대인의 탄생지다. 여기서 최초로 국가를 만들었고 책 중의 책(성경)을 세계에 전했다. 강제 추방된 이후에도 이 땅으로 돌아와 정치적 자유의 회복을 기도했다. … 우리는 이곳에 이스라엘 국가라는 유대인 국가의 설립을 선언한다.” 1948년 5월 14일 오후 텔아비브 미술관에서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랍비의 축도와 독립선언문 서명, 국가 제창이 이어지는 동안 미술관은 환호와 눈물로 얼룩졌다.}}</ref><ref>{{웹 인용 |url=https://www.gov.il/en/Departments/General/declaration-of-establishment-state-of-israel|제목=The Declaration of the Establishment of the State of Israel|웹사이트= Israe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 }}</ref>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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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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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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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안상홍님의 오시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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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haXEIuzRp1o</youtube>




* 설교: '''무화과나무 비유와 안상홍님'''
* '''설교: 무화과나무 비유와 안상홍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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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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