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논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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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고난받기 전날인 유월절의 만찬석에서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약속하며 [[새 언약]]을 세웠다. 이에 초대교회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본을 따라,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인 성력 1월 14일에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며 성찬식을 거행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고린도전서#11장 |제목=고린도전서 11:23-26 |인용문=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유월절 밤]에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ref> 그러나 2-3세기경 로마교회(로마가톨릭교회)로 대표되는 서방 교회가 그 날짜를 변질시켜 유월절 성찬식을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에 하기 시작했다.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인데도 엉뚱하게 그리스도의 [[예수님의 부활|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에 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 간에 유월절 성찬식 날짜를 놓고 촉발된 논쟁이 파스카 논쟁(유월절 논쟁)이다. 동방 교회의 감독 폴리캅(폴리카르포스)과 폴리크라테스는 모두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본을 따라 성력 1월 14일에 성찬식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고난받기 전날인 유월절의 만찬석에서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약속하며 [[새 언약]]을 세웠다. 이에 초대교회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본을 따라,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인 성력 1월 14일에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며 성찬식을 거행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고린도전서#11장 |제목=고린도전서 11:23-26 |인용문=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유월절 밤]에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ref> 그러나 2-3세기경 로마교회(로마가톨릭교회)로 대표되는 서방 교회가 그 날짜를 변질시켜 유월절 성찬식을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에 하기 시작했다.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인데도 엉뚱하게 그리스도의 [[예수님의 부활|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에 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 간에 유월절 성찬식 날짜를 놓고 촉발된 논쟁이 파스카 논쟁(유월절 논쟁)이다. 동방 교회의 감독 폴리캅(폴리카르포스)과 폴리크라테스는 모두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본을 따라 성력 1월 14일에 성찬식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유월절 성찬식 날짜에 대한 동·서방 교회의 논쟁은 325년 니케아 | 유월절 성찬식 날짜에 대한 동·서방 교회의 논쟁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종결되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소집한 이 회의에서 서방 교회의 주장대로 성찬식을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에 행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성경적 유월절이 폐지되고, 부활절 날짜도 '춘분 후 보름달이 지난 다음의 첫 번째 일요일'로 결정됐다. 이후 성력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은 '십사일파'로 불리며 [[이단]]으로 낙인찍혀 점차 사라져 갔다.<ref>{{웹 인용|url=http://passoveris.com/유월절-교회사/파스카-논쟁-부활절-논쟁|제목=파스카 논쟁|웹사이트=passoveris.com}}</ref><ref>{{웹 인용 |url=https://passoveris.com/유월절-교회사/니케아-공의회-유월절 |제목=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 |웹사이트=passoveris.com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 }}</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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