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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이후 역사 == | ==예수님 이후 역사 == | ||
예수님이 [[예수님의 부활|부활]]하신 이후 사두개인은 거짓을 선동하고 로마 총독을 이용해 책임을 무마하려고 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이 대제사장과 | 예수님이 [[예수님의 부활|부활]]하신 이후 사두개인은 거짓을 선동하고 로마 총독을 이용해 책임을 무마하려고 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리자, 군병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도적질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리라고 지시한 것이다. 혹 문제가 생기더라도 로마 총독에게 말해주겠다며 군병들을 안심시켰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마태복음#28장 |제목=마태복음 28:11–15 |인용문=여자들이 갈 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ref> | ||
이 같은 훼방에도,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의 승천|승천]]을 목도한 | 이 같은 훼방에도,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의 승천|승천]]을 목도한 사도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의 축복에 힘입어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파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기적과 이사를 행하자 믿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제사장 등 사두개인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도 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사도행전#4장 |제목=사도행전 4:33-35 |저널= |인용문=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사도행전#6장 |제목=사도행전 6:7 |저널= |인용문=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ref> 이에 시기심이 가득해진 사두개인들이 무고한 사도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사도행전#4장 |제목=사도행전 4:1-4 |저널= |인용문=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사도행전#5장 |제목=사도행전 5:18 |저널= |인용문=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ref> 바리새인과 의기투합하여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기도 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사도행전#6장 |제목=사도행전 6:8-8:1 |저널= |인용문= }}</ref><br> | ||
사두개인은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삼아 많은 혜택을 누렸으나, 기원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성전이 파괴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f>"사두가이파", 장호상,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제10권, 한국브리태니커주식회사, 1995, 677쪽,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AD 70) 후에는 사두가이파에 대한 언급이 역사에서 급속히 사라졌다."</ref> | 사두개인은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삼아 많은 혜택을 누렸으나, 기원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성전이 파괴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f>"사두가이파", 장호상,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제10권, 한국브리태니커주식회사, 1995, 677쪽,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AD 70) 후에는 사두가이파에 대한 언급이 역사에서 급속히 사라졌다."</ref>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