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 (세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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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례와 세례 ===
=== 침례와 세례 ===
물을 조금 뿌리는 세례는, 물이 귀한 사막 등지에서 몸을 다 적실 만한 물이 없어 몇 방울의 물을 뿌리는 것으로 침례를 대체하거나 온몸을 물에 적실 수 없는 환자에게 침례를 주어야 하는 경우 등<ref>《교회사핸드북》, 송광택 역, 생명의말씀사, 1989, 10쪽, "세례는 보통 강이나 큰 저택의 목욕탕에서 물속에 몸을 잠금으로 이루어졌다. ... '''2세기 초'''부터 '''긴급한 일'''이나 '''환자'''의 경우에 '''물을 붓는 세례'''가 허락되었다."</ref> 불가피한 상황에서 허용되었다.<br>
물을 조금 뿌리는 세례는, 물이 귀한 사막 등지에서 몸을 다 적실 만한 물이 없어 몇 방울의 물을 뿌리는 것으로 침례를 대체하거나 온몸을 물에 적실 수 없는 환자에게 침례를 주어야 하는 경우 등<ref>《교회사핸드북》, 송광택 역, 생명의말씀사, 1989, 10쪽, "세례는 보통 강이나 큰 저택의 목욕탕에서 물속에 몸을 잠금으로 이루어졌다. ... '''2세기 초'''부터 '''긴급한 일'''이나 '''환자'''의 경우에 '''물을 붓는 세례'''가 허락되었다."</ref> 불가피한 상황에서 허용되었다.<br>
그러나 기원후 120년경 이후로 물이 충분한 지역에서조차 침수(沈水) 예식을 하지 않고 약식으로 행하는 곳이 점차 늘어났고,<ref>"세례식", 송낙원, 《교회사》, 이건사, 1981, 99-100쪽, "세례를 베푸는 방법은 일반으로 침례하는 것이 원식이나 침례 대신으로 세 번 물을 붓는 일이 전기에도 약간 있은 것이고 120년경에는 완전한 세례식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대개 세례용수가 침례하기에 충분치 못함에 의한 것이다."</ref> 13세기부터는 물을 뿌리는 세례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ref>필립 샤프, 《교회사 전집》,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4, 243쪽, "Walafrid Strabo에 따르면 9세기에도 물을 붓고 뿌리는 방식이 여전히 예외적이었지만, 유아세례가 널리 확산되면서 가장 용이한 방법으로 점차 자리를 잡았고, 특히 기온이 낮은 북부 지방에서 더욱 그랬으며, 13세기 말에는 서방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ref><ref>《일반 백과사전》(The Popular Encyclopedia, Vol 1), Blackie & Son, 1846, 411-412쪽 "사도시대의 침례 방식은 매우 단순했다. 침례 받을 사람은 강이나 용기(통) 속에 담겼다. ... 침실을 떠날 수 없는 '''병자의 경우'''에만 온몸을 담그는 것을 생략했다. 이 경우에는 '''병상(病床) 세례''', 즉 '''물을 뿌리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 '''서방 교회는 13세기부터 물을 뿌리는 세례식을 적용'''했는데, 개신교회에서도 이를 계속했지만 침례교회에서는 이를 거부했다."</ref>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죄의 몸을 장사한다는 침례의 원래 의미가 퇴색하고 약간의 물을 뿌리는 세례 의식을 행하는 교회가 많다. 가톨릭과 개신교 등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에서 약식 세례를 행하고 있다.
그러나 기원후 120년경 이후로 물이 충분한 지역에서조차 침수(沈水) 예식을 하지 않고 약식으로 행하는 곳이 점차 늘어났고,<ref>"세례식", 송낙원, 《교회사》, 이건사, 1981, 99-100쪽, "세례를 베푸는 방법은 일반으로 침례하는 것이 원식이나 침례 대신으로 세 번 물을 붓는 일이 전기에도 약간 있은 것이고 120년경에는 완전한 세례식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대개 세례용수가 침례하기에 충분치 못함에 의한 것이다."</ref> 13세기부터는 물을 뿌리는 세례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ref>필립 샤프, 《교회사 전집》,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4, 243쪽, "Walafrid Strabo에 따르면 9세기에도 물을 붓고 뿌리는 방식이 여전히 예외적이었지만, 유아세례가 널리 확산되면서 가장 용이한 방법으로 점차 자리를 잡았고, 특히 기온이 낮은 북부 지방에서 더욱 그랬으며, 13세기 말에는 서방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ref><ref>《일반 백과사전》(The Popular Encyclopedia, Vol 1), Blackie & Son, 1846, 411-412쪽 "사도시대의 침례 방식은 매우 단순했다. 침례 받을 사람은 강이나 용기(통) 속에 담겼다. ... 침실을 떠날 수 없는 '''병자의 경우'''에만 온몸을 담그는 것을 생략했다. 이 경우에는 '''병상(病床) 세례''', 즉 '''물을 뿌리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 '''서방 교회는 13세기부터 물을 뿌리는 세례식을 적용'''했는데, 개신교회에서도 이를 계속했지만 침례교회에서는 이를 거부했다."</ref>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죄의 몸을 장사한다는 침례의 원래 의미가 퇴색하고 약간의 물을 뿌리는 세례 의식을 행하는 [[교회]]가 많다. 가톨릭과 개신교 등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에서 약식 세례를 행하고 있다.


===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침례 ===
===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침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