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스 (키루스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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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키루스 2세, 영어: Cyrus Ⅱ, 재위: B.C. 559?–B.C. 529?)는 [[성경]]에서 바사로 불리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창건한 군주다. 키루스 대왕, 또는 키루스 대제(Cyrus the Great)라고도 불린다. <br>
'''고레스'''(키루스 2세, 영어: Cyrus Ⅱ, 재위: B.C. 559?–B.C. 529?)는 [[성경]]에서 바사로 불리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창건한 군주다. 키루스 대왕, 또는 키루스 대제(Cyrus the Great)라고도 불린다. <br>
고레스는 서아시아에서 중동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해 종교, 이념, 인종, 역사가 다른 23개 국가를 하나로 통일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이자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9D%B8%EB%AA%85%EC%82%AC%EC%A0%84/%EC%84%B8_%EA%B3%84_%EC%9D%B8_%EB%AA%85/%E3%85%85#%EC%86%8C%ED%81%AC%EB%9D%BC%ED%85%8C%EC%8A%A4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9D%B8%EB%AA%85%EC%82%AC%EC%A0%84/%EC%84%B8_%EA%B3%84_%EC%9D%B8_%EB%AA%85/%E3%85%8B#%ED%81%AC%EC%84%B8%EB%85%B8%ED%8F%B0 크세노폰]은 전기소설 《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에서 고레스를 용맹하면서 관대하고 아량 있는 이상적인 정복자로 표현했다.<ref>{{인용 |url= |제목=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주영사 |날짜= |연도=2012|저자= 크세노폰|저자링크= |저자2=이은종 역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94508–09–2 |인용문= }}</ref> 그의 인품과 통치 이념은 적국이었던 그리스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B%8F%84%EC%8B%9C%EA%B5%AD%EA%B0%80%EC%99%80_%EC%B6%98%EC%B6%94%EC%A0%84%EA%B5%AD%EC%8B%9C%EB%8C%80/%EC%95%8C%EB%A0%89%EC%82%B0%EB%8D%94_%EB%8C%80%EC%A0%9C%EA%B5%AD#%EC%95%8C%EB%A0%89%EC%82%B0%EB%8D%94_%EB%8C%80%EC%99%95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ref>{{웹 인용|url=https://www.news1.kr/articles/?2654859 |제목=페르시아 제국의 원형질 파사르가드 |저널=뉴스1코리아 |웹사이트= |날짜= 2016. 5. 6. |저자= |출판사=|인용문=키루스 대왕은 이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 수많은 이웃나라들과 부족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면서도 그는 어떻게 하면 이들을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 그는 적국이었던 그리스에서도 군주로 칭송을 받았다. 그 까닭은 다름이 아니다. 바로 관용과 융합, 유화정책 덕분이다. ... 그런 키루스 대왕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초의 선언을 한다. 여러 민족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바빌론 주민의 생계를 향상하며 포로로 끌려온 민족과 그들이 가진 종교적 상징물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키루스 대왕의 선언은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에 영향을 줬고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본 철학으로 작용했다. }}</ref>  <br>
고레스는 서아시아에서 중동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해 종교, 이념, 인종, 역사가 다른 23개 국가를 하나로 통일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이자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9D%B8%EB%AA%85%EC%82%AC%EC%A0%84/%EC%84%B8_%EA%B3%84_%EC%9D%B8_%EB%AA%85/%E3%85%85#%EC%86%8C%ED%81%AC%EB%9D%BC%ED%85%8C%EC%8A%A4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9D%B8%EB%AA%85%EC%82%AC%EC%A0%84/%EC%84%B8_%EA%B3%84_%EC%9D%B8_%EB%AA%85/%E3%85%8B#%ED%81%AC%EC%84%B8%EB%85%B8%ED%8F%B0 크세노폰]은 전기소설 《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에서 고레스를 용맹하면서 관대하고 아량 있는 이상적인 정복자로 표현했다.<ref>{{인용 |url= |제목=키로파에디아(키루스의 교육)|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주영사 |날짜= |연도=2012|저자= 크세노폰 |저자링크= |저자2=이은종 역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94508–09–2 |인용문= }}</ref> 그의 인품과 통치 이념은 적국이었던 그리스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B%8F%84%EC%8B%9C%EA%B5%AD%EA%B0%80%EC%99%80_%EC%B6%98%EC%B6%94%EC%A0%84%EA%B5%AD%EC%8B%9C%EB%8C%80/%EC%95%8C%EB%A0%89%EC%82%B0%EB%8D%94_%EB%8C%80%EC%A0%9C%EA%B5%AD#%EC%95%8C%EB%A0%89%EC%82%B0%EB%8D%94_%EB%8C%80%EC%99%95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ref>{{웹 인용|url=https://www.news1.kr/articles/?2654859 |제목=페르시아 제국의 원형질 파사르가드 |저널=뉴스1코리아 |웹사이트= |날짜= 2016. 5. 6. |저자= |출판사=|인용문=키루스 대왕은 이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 수많은 이웃나라들과 부족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면서도 그는 어떻게 하면 이들을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 그는 적국이었던 그리스에서도 군주로 칭송을 받았다. 그 까닭은 다름이 아니다. 바로 관용과 융합, 유화정책 덕분이다. ... 그런 키루스 대왕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초의 선언을 한다. 여러 민족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바빌론 주민의 생계를 향상하며 포로로 끌려온 민족과 그들이 가진 종교적 상징물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키루스 대왕의 선언은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에 영향을 줬고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본 철학으로 작용했다. }}</ref>  <br>
고레스는 키루스를 히브리어 발음(כּוֹרֶשׁ: koresh)으로 적은 이름이다. 히브리어(일부 아람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에서 고레스는 [[바벨론]](신바빌로니아) 제국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의 해방자, 기름 부음 받은 자로 기록되었다.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국가의 왕임에도 [[이사야]] 41, 44–46장에 그에 대한 예언이 자세히 쓰였다.
고레스는 키루스를 히브리어 발음(כּוֹרֶשׁ: koresh)으로 적은 이름이다. 히브리어(일부 아람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에서 고레스는 [[바벨론]](신바빌로니아) 제국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의 해방자, 기름 부음 받은 자로 기록되었다.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국가의 왕임에도 [[이사야]] 41, 44–46장에 그에 대한 예언이 자세히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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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Cyrus the Great Tomb, Pasargadae.jpg|Cyrus_the_Great_Tomb,_Pasargadae|섬네일|파사르가다에 있는 고레스의 무덤]]
[[File:Cyrus the Great Tomb, Pasargadae.jpg|Cyrus_the_Great_Tomb,_Pasargadae|섬네일|파사르가다에 있는 고레스의 무덤]]
===출생===
===출생===
고레스는 기원전 590–580년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C%A0%9C2%EA%B8%B0_%EB%AC%B8%EB%AA%85/%EC%98%A4%EB%A6%AC%EC%97%94%ED%8A%B8_%EC%84%B8%EA%B3%84%EC%9D%98_%EC%84%B1%EB%A6%BD#%EB%A9%94%EB%94%94%EC%95%84_%EC%99%95%EA%B5%AD 메대(메디아)] 또는 페르시스(지금의 이란 파르스)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는 자기 딸 만다네 공주를 피정복지 페르시스의 군주 캄비세스와 결혼시켰다. 이들이 낳은 아들이 고레스다. 그리스 역사가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B%8F%84%EC%8B%9C%EA%B5%AD%EA%B0%80%EC%99%80_%EC%B6%98%EC%B6%94%EC%A0%84%EA%B5%AD%EC%8B%9C%EB%8C%80/%EA%B7%B8%EB%A6%AC%EC%8A%A4_%EB%AC%B8%ED%99%94#%ED%97%A4%EB%A1%9C%EB%8F%84%ED%86%A0%EC%8A%A4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역사》에 따르면 아스티아게스는 외손자가 자기를 멸망시키는 꿈을 꾸고 신하에게 고레스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신하는 아기를 소치기에 주어 죽이게 했는데 소치기가 죽은 자기 아이와 맞바꿔 몰래 키웠다고 한다.<ref>{{인용 |url= |제목=역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 도서출판 숲|날짜= |연도= |저자=헤로도토스 |쪽=94–97 |시리즈= |isbn=978-89-91290-26-6 |인용문=그는 이번에도 해몽가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을 보내 이미 임신 중인 딸을 페르시아에서 불러오게 했다. 그는 곁에 두고 감시하다가 딸이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그 아이를 죽일 참이었다. 딸이 낳은 아이가 그를 대신해 왕이 되리라는 마고스들의 해몽 때문이었다. 마침내 만다네는 퀴로스를 해산하고, 외손자 퀴로스가 태어나자 아스튀아게스는 그의 친족 중 한 명인 하르파고스를 불렀다. 하르파고스는 메디아인들 중에서 그가 가장 신뢰하는 심복이자 그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 소치기는 현 상황에서 아내가 한 말이 지당하다고 여기고 지체 없이 그녀가 말한 대로 했다. 그는 죽이려고 안고 온 아이는 아내에게 안겨주고, 죽은 제 아이는 다른 아이를 담아 온 상자에 넣고 그 아이의 장신구로 장식한 다음 깊은 산속 후미진 곳으로 들고 가 버렸다. ... 그리하여 한 아이는 묻히고, 후일 퀴로스라 불린 다른 아이는 소치기의 아내가 거두어 길렀다.}}</ref>
고레스는 기원전 590–580년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C%A0%9C2%EA%B8%B0_%EB%AC%B8%EB%AA%85/%EC%98%A4%EB%A6%AC%EC%97%94%ED%8A%B8_%EC%84%B8%EA%B3%84%EC%9D%98_%EC%84%B1%EB%A6%BD#%EB%A9%94%EB%94%94%EC%95%84_%EC%99%95%EA%B5%AD 메대(메디아)] 또는 페르시스(지금의 이란 파르스)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는 자기 딸 만다네 공주를 피정복지 페르시스의 군주 캄비세스와 결혼시켰다. 이들이 낳은 아들이 고레스다. 그리스 역사가 [https://ko.wikisource.org/wiki/%EA%B8%80%EB%A1%9C%EB%B2%8C_%EC%84%B8%EA%B3%84_%EB%8C%80%EB%B0%B1%EA%B3%BC%EC%82%AC%EC%A0%84/%EC%84%B8%EA%B3%84%EC%82%AC/%EC%9D%B8%EB%A5%98_%EB%AC%B8%ED%99%94%EC%9D%98_%EC%8B%9C%EC%9E%91/%EB%8F%84%EC%8B%9C%EA%B5%AD%EA%B0%80%EC%99%80_%EC%B6%98%EC%B6%94%EC%A0%84%EA%B5%AD%EC%8B%9C%EB%8C%80/%EA%B7%B8%EB%A6%AC%EC%8A%A4_%EB%AC%B8%ED%99%94#%ED%97%A4%EB%A1%9C%EB%8F%84%ED%86%A0%EC%8A%A4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역사》에 따르면 아스티아게스는 외손자가 자기를 멸망시키는 꿈을 꾸고 신하에게 고레스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신하는 아기를 소치기에 주어 죽이게 했는데 소치기가 죽은 자기 아이와 맞바꿔 몰래 키웠다고 한다.<ref>{{인용 |url= |제목=역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 숲|날짜= |연도= |저자=헤로도토스 저|저자2=천병희 역 |쪽=94–97 |시리즈= |isbn=978-89-91290-26-6 |인용문=그는 이번에도 해몽가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을 보내 이미 임신 중인 딸을 페르시아에서 불러오게 했다. 그는 곁에 두고 감시하다가 딸이 아이를 낳으면 곧바로 그 아이를 죽일 참이었다. 딸이 낳은 아이가 그를 대신해 왕이 되리라는 마고스들의 해몽 때문이었다. 마침내 만다네는 퀴로스를 해산하고, 외손자 퀴로스가 태어나자 아스튀아게스는 그의 친족 중 한 명인 하르파고스를 불렀다. 하르파고스는 메디아인들 중에서 그가 가장 신뢰하는 심복이자 그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 소치기는 현 상황에서 아내가 한 말이 지당하다고 여기고 지체 없이 그녀가 말한 대로 했다. 그는 죽이려고 안고 온 아이는 아내에게 안겨주고, 죽은 제 아이는 다른 아이를 담아 온 상자에 넣고 그 아이의 장신구로 장식한 다음 깊은 산속 후미진 곳으로 들고 가 버렸다. ... 그리하여 한 아이는 묻히고, 후일 퀴로스라 불린 다른 아이는 소치기의 아내가 거두어 길렀다.}}</ref>


===메대(메디아) 정복===
===메대(메디아)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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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죽음===
고레스는 계속해서 중앙 아시아 원정에 나섰고 기원전 529년경 아무다리야강과 작사르테스 강변 부근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레스의 뒤를 이어 캄비세스 2세가 왕이 되었다. 그는 기원전 525년경 고대 이집트를 정복하여 오리엔트<ref>{{웹 인용 |url=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_no=241166&searchKeywordTo=3 |제목=오리엔트 |웹사이트=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역사』 서양사에서,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이집트ㆍ메소포타미아를 이르는 말.}}</ref>를 통일했다.<ref>{{웹 인용 |url=https://www.britannica.com/place/ancient-Iran|제목=ancient Iran|웹사이트= Britannica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 |인용문= }}</ref>
고레스는 계속해서 중앙 아시아 원정에 나섰고 기원전 529년경 아무다리야강과 작사르테스 강변 부근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레스의 뒤를 이어 캄비세스 2세가 왕이 되었다. 그는 기원전 525년경 고대 이집트를 정복하여 오리엔트<ref>{{웹 인용 |url=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_no=241166&searchKeywordTo=3 |제목=오리엔트 |웹사이트=표준국어대사전 |저널= |출판사=국립국어원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역사』 서양사에서,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이집트ㆍ메소포타미아를 이르는 말.}}</ref>를 통일했다.<ref>{{웹 인용 |url=https://www.britannica.com/place/ancient-Iran|제목=ancient Iran|웹사이트= Britannica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 |인용문= }}</ref>


==성경 속의 고레스(키루스 2세)==
==성경 속의 고레스(키루스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