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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 중 하나로 인정했고, 이후 기독교를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그는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군 복무와 세금을 면제해 주었고, 기독교 교회에 유산을 기증하는 행위를 합법화했다. 이는 이교의 사제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권리였으므로 기독교에만 특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ref>이승희,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앙과 종교정책(306-324년)〉,《서양고대사연구》 Vol. 38,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14, 132-133쪽, "그[콘스탄티누스]는 성직자들에게 공무와 세금을 면제시켜 주었으며, 321년에는 상속 권한을 법적으로 승인하였다. 또한 주교에게 민사재판권을 양도함으로써 특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 하지만 공무 및 세금 면제의 특권과 상속 권한은 이미 이교 사제들도 누리던 것이었다. 또한 민사재판권을 인정한 것은 기독교 단체 내의 분란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준 것일 뿐, 교회에 특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ref> |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 중 하나로 인정했고, 이후 기독교를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그는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군 복무와 세금을 면제해 주었고, 기독교 교회에 유산을 기증하는 행위를 합법화했다. 이는 이교의 사제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권리였으므로 기독교에만 특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ref>이승희,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앙과 종교정책(306-324년)〉,《서양고대사연구》 Vol. 38,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2014, 132-133쪽, "그[콘스탄티누스]는 성직자들에게 공무와 세금을 면제시켜 주었으며, 321년에는 상속 권한을 법적으로 승인하였다. 또한 주교에게 민사재판권을 양도함으로써 특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 하지만 공무 및 세금 면제의 특권과 상속 권한은 이미 이교 사제들도 누리던 것이었다. 또한 민사재판권을 인정한 것은 기독교 단체 내의 분란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준 것일 뿐, 교회에 특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ref> | ||
콘스탄티누스가 321년 3월 7일 반포한 일요일 휴업령은 6세기에 편찬된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22973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통해 전해진다. | 콘스탄티누스가 321년 3월 7일 반포한 일요일 휴업령은 6세기에 편찬된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22973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통해 전해진다. | ||
{{인용문|“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Sunday]'''에 쉬어야 한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이날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이기 때문이다. ... 주후 321년 3월 7일. | {{인용문|“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Sunday]'''에 쉬어야 한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이날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이기 때문이다. ... 주후 321년 3월 7일."<br>콘스탄틴의 칙령(유스티니아누스 법전〈Cod. Justinianus〉, Ⅲ xii 3)|라이온사 편, 《교회사 핸드북》, 송광택 역, 생명의말씀사, 1997, 144쪽}} | ||
칙령 속 '존엄한 태양의 날'이라는 표현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기독교의 예배일보다는 태양신 경배일로 인식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는 태양신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698789 미트라교]였다. 미트라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여겼다. 일요일 휴업령은 2세기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던 로마 지역의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당시 로마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태양신 미트라 교도를 배려한 정책이었다. | 칙령 속 '존엄한 태양의 날'이라는 표현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기독교의 예배일보다는 태양신 경배일로 인식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는 태양신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698789 미트라교]였다. 미트라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여겼다. 일요일 휴업령은 2세기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던 로마 지역의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당시 로마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태양신 미트라 교도를 배려한 정책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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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ristAsSol.jpg|섬네일|240px|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태양신과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동일한 신으로 여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스도를 태양신으로 묘사한 3세기 모자이크.]] | [[파일:ChristAsSol.jpg|섬네일|240px|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태양신과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동일한 신으로 여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스도를 태양신으로 묘사한 3세기 모자이크.]] | ||
일부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 세례 받기를 보류했으며,<ref>존 줄리어스 노리치, 《비잔티움 연대기1: 창건과 혼란》, 남경태 역, 바다출판사, 2007, 52-55쪽,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과연 완전한 것이었을까? ... 적어도 324년까지는 무적의 태양과 결부된 그의 모습이 주화에 계속 묘사되었다. 또한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로, 그는 여전히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해 망설였다. 이후 그는 사 반세기 뒤에 죽음을 앞둔 무렵까지 세례를 미루게 된다. 이런 그의 태도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아직 전통적인 신들을 고수하는 신민들에게 불안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ref> 의도적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태양신과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동일한 신으로 간주했다. | 일부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 세례 받기를 보류했으며,<ref>존 줄리어스 노리치, 《비잔티움 연대기1: 창건과 혼란》, 남경태 역, 바다출판사, 2007, 52-55쪽,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과연 완전한 것이었을까? ... 적어도 324년까지는 무적의 태양과 결부된 그의 모습이 주화에 계속 묘사되었다. 또한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로, 그는 여전히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해 망설였다. 이후 그는 사 반세기 뒤에 죽음을 앞둔 무렵까지 세례를 미루게 된다. 이런 그의 태도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아직 전통적인 신들을 고수하는 신민들에게 불안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ref> 의도적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태양신과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동일한 신으로 간주했다. | ||
{{인용문|콘스탄틴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us-로마 종교계의 최고위직)라는 이방 대제사장의 칭호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었고 10년 동안 그의 '''화폐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신(神)으로 보여지는 불멸의 태양이라는 이방신의 상징이 나타나 있었다.''' ... 콘스탄틴 이전의 종교인 태양 숭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콘스탄틴은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했었다.''' 이러한 신앙은 그리스도를 그리는 데 있어서 태양의 상을 사용하는 기독교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경향에 의해 더 쉽게 동일시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빛과 구원의 근원이고,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밑에서 발견된 3세기 무덤의 모자이크에서는 그리스도를 마차에 탄 태양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321년에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날을 '''“태양의 | {{인용문|콘스탄틴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us-로마 종교계의 최고위직)라는 이방 대제사장의 칭호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었고 10년 동안 그의 '''화폐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신(神)으로 보여지는 불멸의 태양이라는 이방신의 상징이 나타나 있었다.''' ... 콘스탄틴 이전의 종교인 태양 숭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콘스탄틴은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했었다.''' 이러한 신앙은 그리스도를 그리는 데 있어서 태양의 상을 사용하는 기독교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경향에 의해 더 쉽게 동일시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빛과 구원의 근원이고,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밑에서 발견된 3세기 무덤의 모자이크에서는 그리스도를 마차에 탄 태양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321년에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이라고 명명했다.|라이온사 편, 《교회사 핸드북》, 송광택 역, 생명의말씀사, 1997, 130-131쪽}} | ||
'폰티펙스 막시무스([https://www.britannica.com/topic/pontifex-maximus Pontifex Maximus])'는 로마 국가 사제단에 속한 최고 사제를 가리키는 라틴어 명칭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칭호를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또 로마 제국 금화인 솔리두스에 태양신의 모습을 새겨 유통시켰다. | '폰티펙스 막시무스([https://www.britannica.com/topic/pontifex-maximus Pontifex Maximus])'는 로마 국가 사제단에 속한 최고 사제를 가리키는 라틴어 명칭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칭호를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또 로마 제국 금화인 솔리두스에 태양신의 모습을 새겨 유통시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