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휴업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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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제국 역사학의 권위자인 일본의 한 역사가는 로마서 13장<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로마서#13장|제목=로마서 13:1-2|인용문=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ref>을 들어 "로마제국과 그리스도교의 결합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며 "지배자에게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 가르침은 달리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평가했다.<ref>이노우에 고이치,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이경덕 역, 다른세상, 2010, 46-49쪽.</ref> 지배자의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지배자를 따를 것을 교훈하는 성경의 가르침이 황제에게 흔들리지 않는 권력을 부여할 존재를 원하던 콘스탄티누스의 필요를 충족시켰다는 것이다.<br> | 비잔틴제국 역사학의 권위자인 일본의 한 역사가는 로마서 13장<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로마서#13장|제목=로마서 13:1-2|인용문=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ref>을 들어 "로마제국과 그리스도교의 결합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며 "지배자에게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 가르침은 달리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평가했다.<ref>이노우에 고이치,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이경덕 역, 다른세상, 2010, 46-49쪽.</ref> 지배자의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지배자를 따를 것을 교훈하는 성경의 가르침이 황제에게 흔들리지 않는 권력을 부여할 존재를 원하던 콘스탄티누스의 필요를 충족시켰다는 것이다.<br> | ||
또한 콘스탄티누스에게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수단이었다. | 또한 콘스탄티누스에게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수단이었다. | ||
{{인용문|콘스탄틴은 교회를 애호하려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출발한 것은 틀림없으나 비록 그것은 그렇다 할지라도 이교도들을 잘 달래는 일도 필요하였다. 따라서 밀란(Milan)에서 합의를 본 그 정책은 모든 종교는 완전히 동등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다스려 가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교인을 지지하였고, 그리고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가 전 제국을 하나로 묶어 줄 세멘트[시멘트]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고 우리가 결론을 지을 수 있다.|J.W.C. 완드, 《교회사(초대편)》, 이장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0, 192쪽}} | {{인용문|콘스탄틴은 교회를 애호하려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출발한 것은 틀림없으나 비록 그것은 그렇다 할지라도 이교도들을 잘 달래는 일도 필요하였다. 따라서 밀란(Milan)에서 합의를 본 그 정책은 모든 종교는 완전히 동등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다스려 가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교인을 지지하였고, 그리고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가 전 제국을 하나로 묶어 줄 세멘트[시멘트]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고 우리가 결론을 지을 수 있다.|J. W. C. 완드, 《교회사(초대편)》, 이장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0, 192쪽}} | ||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 내에 늘어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어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기존 다신교 세력을 통합하고자 했다. 일요일 휴업령 역시 이 같은 의도에서 나온 정책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신성시하는 태양신교와 이미 하나님의 가르침을 떠나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던 기독교(서방 교회)를 통합하는 묘책으로 일요일 휴업령을 내린 것이다. |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 내에 늘어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만들어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기존 다신교 세력을 통합하고자 했다. 일요일 휴업령 역시 이 같은 의도에서 나온 정책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신성시하는 태양신교와 이미 하나님의 가르침을 떠나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던 기독교(서방 교회)를 통합하는 묘책으로 일요일 휴업령을 내린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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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 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일요일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이종기,《교회사》, 세종문화사, 1992, 145쪽}} | {{인용문|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 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일요일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이종기,《교회사》, 세종문화사, 1992, 145쪽}} | ||
그러나 일요일 휴업령을 내려 황제의 권위로 제국의 모든 사람이 일요일에 쉬도록 강제하면서 동방 교회도 일요일에 예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그러나 일요일 휴업령을 내려 황제의 권위로 제국의 모든 사람이 일요일에 쉬도록 강제하면서 동방 교회도 일요일에 예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
{{인용문|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321년에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을 내린 것'''이다. 이 법령은 주의 날을 이교의 제전일(祭典日)과 동등한 수준의 절기로 인정한 것이며, 일요일은 일을 중지하는 것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 날은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만 단순히 참된 경일(慶日)<ref>영어 원문에는 '참된 경일'이 아니라 라틴어로 'dies venerabilis solis(존엄한 태양의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음.</ref>이라고만 불리웠는데 여기에 대하여 이교도들이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J.W.C. 완드, 《교회사(초대편)》, 이장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0, 193쪽}} | {{인용문|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321년에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을 내린 것'''이다. 이 법령은 주의 날을 이교의 제전일(祭典日)과 동등한 수준의 절기로 인정한 것이며, 일요일은 일을 중지하는 것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 날은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만 단순히 참된 경일(慶日)<ref>영어 원문에는 '참된 경일'이 아니라 라틴어로 'dies venerabilis solis(존엄한 태양의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음.</ref>이라고만 불리웠는데 여기에 대하여 이교도들이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J. W. C. 완드, 《교회사(초대편)》, 이장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0, 193쪽}} | ||
일요일 휴업령은 기독교가 일요일 예배를 공식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시기에는 안식일 등 진리를 고수했으나 핍박이 그치고 우대받게 되자 안식일을 준수해오던 동방의 교회들까지 로마 태양신교에 굴복하게 된 것이다. 일요일 예배는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황제의 권위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사람의 계명]]이다. | 일요일 휴업령은 기독교가 일요일 예배를 공식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시기에는 안식일 등 진리를 고수했으나 핍박이 그치고 우대받게 되자 안식일을 준수해오던 동방의 교회들까지 로마 태양신교에 굴복하게 된 것이다. 일요일 예배는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황제의 권위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사람의 계명]]이다. | ||
<small>{{참고|주일예배 (일요일 예배)|설명=더 자세한 내용은}}</small> | <small>{{참고|주일예배 (일요일 예배)|설명=더 자세한 내용은}}</smal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