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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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9092&cid=40942&categoryId=31575 카타콤(지하 묘지)] 벽화에서부터 시작됐으며, 서양 종교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중 하나이다.<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859&cid=46720&categoryId=46819 |제목=최후의 만찬 |웹사이트=미술백과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최후의 만찬이란 주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카타콤 벽화에서부터 시작된 서양 종교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가운데 하나다. }}</ref>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 받으신 전날, 열두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한다.<br> | '최후의 만찬'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9092&cid=40942&categoryId=31575 카타콤(지하 묘지)] 벽화에서부터 시작됐으며, 서양 종교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중 하나이다.<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3859&cid=46720&categoryId=46819 |제목=최후의 만찬 |웹사이트=미술백과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최후의 만찬이란 주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카타콤 벽화에서부터 시작된 서양 종교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가운데 하나다. }}</ref>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 받으신 전날, 열두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한다.<br> | ||
과거 화가들은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보다 누군가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제작을 의뢰한 계층이 주로 귀족과 성직자였기에 당시 미술 작품은 역사화나 종교화에 치중돼 있었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그날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 제자의 배반 등이 주는 극적 긴장감이 있어 의뢰자나 화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였다. | 과거 화가들은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보다 누군가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제작을 의뢰한 계층이 주로 귀족과 성직자였기에 당시 미술 작품은 역사화나 종교화에 치중돼 있었다. 특히 '최후의 만찬'은 그날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 제자의 배반 등이 주는 극적 긴장감이 있어 의뢰자나 화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였다. | ||
또 '만찬'이란 주제 때문에 기독교 시설의 식당에 흔히 걸리는 그림 소재였다.<ref> | 또 '만찬'이란 주제 때문에 기독교 시설의 식당에 흔히 걸리는 그림 소재였다.<ref>J. 스티븐 랭, "최후의 만찬", 《바이블 키워드》, 남경태 역, 들녘, 2007, "최후의 만찬은 극적인 긴장감이 있기 때문에 화가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예수는 자신이 처형되리라는 것, 유다가 배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식당 벽에 최후의 만찬을 그린 수도원은 많이 있다. 수사들이 식사할 때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그날의 식사를 떠올렸을 것이다."</ref><br> | ||
최후의 만찬은 오랫동안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르네상스 회화의 선구자라 불리는 조토 디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최후의 | 최후의 만찬은 오랫동안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르네상스 회화의 선구자라 불리는 조토 디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최후의 만찬〉, 북부 르네상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네덜란드 화가 디르크 바우츠(Dirck Bouts)의 〈최후의 만찬〉, 에스파냐 화가 후안 데후아네스(Juan de Juanes)의 〈최후의 만찬〉 등이다.<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75360&cid=42645&categoryId=42645 |제목=최후의 만찬 |웹사이트= |저널=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 |출판사=마로니에북스 |날짜= |연도= |저자=스티븐 파딩 |쪽= |시리즈= |isbn= |인용문= }}</ref><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75451&cid=42645&categoryId=42645 |제목=최후의 만찬 |웹사이트= |저널=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 |출판사=마로니에북스 |날짜= |연도= |저자=스티븐 파딩 |쪽= |시리즈= |isbn= |인용문= }}</ref> 그중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가장 유명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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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 gallery="" widths="240" heights="200" caption="최후의 만찬"> | <gallery ;="" gallery="" widths="240" heights="200" caption="최후의 만찬"> | ||
파일:Dieric Bouts - Altarpiece of the Holy Sacrament - WGA03002.jpg|디르크 바우츠(Dirck Bouts), 1415경-1475, 벨기에 루뱅 | 파일:Dieric Bouts - Altarpiece of the Holy Sacrament - WGA03002.jpg|디르크 바우츠(Dirck Bouts), 1415경-1475, 벨기에 루뱅 성 베드로 성당 소장 | ||
파일:Leonardo da Vinci (1452-1519) - The Last Supper (1495-1498).jpg|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탈리아 밀라노 | 파일:Leonardo da Vinci (1452-1519) - The Last Supper (1495-1498).jpg|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소장 | ||
파일:Valentin de Boulogne, Last Supper.jpg|발랑탱 드불로뉴(Valentin de Boulogne), 1591-1632, 로마국립고전미술관 소장 | 파일:Valentin de Boulogne, Last Supper.jpg|발랑탱 드불로뉴(Valentin de Boulogne), 1591-1632, 로마국립고전미술관 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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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eritage.unesco.or.kr/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해설에 따르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3명씩 네 무리의 제자들이 배치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heritage.unesco.or.kr/산타-마리아-델레-그라치에-교회와-도미니크-수도원/ |제목=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와 도미니크 수도원 및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웹사이트=유네스코와 유산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전통적인 해석에서, 유다는 홀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예수와 다른 제자들은 테이블 건너편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러한 해석 방식을 거부하여, 예수를 제자들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예수의 양쪽에 3명씩 네 무리의 제자들을 배치하였다. 왼쪽에 나란히 있는 바돌로매, 소(小)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안드레는 예수의 선언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두 번째 무리는 [[베드로]], [[가룟 유다|유다]]와 [[사도 요한|요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베드로는 요한 쪽으로 기대어 있고 요한은 예수 옆에 앉아 유다를 앞으로 밀고 있다. 유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분리하지 않으면서 강조되었다. 오른쪽의 무리는 [[마태]]와 다대오, 시몬으로 구성되는데, 그들은 열띤 토론에 빠져서 예수를 보지 않고 있다. 가운데에서 깜짝 놀라 예수 쪽으로 기대는 제자들은 도마와 대(大)야고보(요한의 형제 야고보), 빌립보이며, 이들은 예수에게 자신들의 충성을 확인하느라 열심이다.}}</ref><ref>{{인용 |url= |제목=서양미술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도서출판 예경 |날짜=1997. 5. 1. |연도= |저자=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쪽=297-298 |시리즈= |isbn=9788970840659 |인용문=그들 중에 성미가 급한 성 베드로가 예수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성 요한에게 달려간다. 그가 무엇인지를 성 요한에게 귓속에 속삭일 때 무심코 유다를 앞으로 떼밀어 유다는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지는 않았으나 고립되어 보인다. 유다만이 몸짓도 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는 몸을 젖히며 의심과 분노에 찬 모습으로 올려다보고 있는데 그의 모습은 이 갑작스러운 소란 속에 조용히 체념한 듯 앉아 있는 예수의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 12사도들은 제스처와 움직임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는 세 사람씩 네 무리로 자연스럽게 구별되는 것처럼 보인다.}}</ref><br> | [https://heritage.unesco.or.kr/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해설에 따르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3명씩 네 무리의 제자들이 배치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heritage.unesco.or.kr/산타-마리아-델레-그라치에-교회와-도미니크-수도원/ |제목=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와 도미니크 수도원 및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웹사이트=유네스코와 유산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전통적인 해석에서, 유다는 홀로 묘사되어 있는 반면 예수와 다른 제자들은 테이블 건너편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러한 해석 방식을 거부하여, 예수를 제자들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예수의 양쪽에 3명씩 네 무리의 제자들을 배치하였다. 왼쪽에 나란히 있는 바돌로매, 소(小)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안드레는 예수의 선언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두 번째 무리는 [[베드로]], [[가룟 유다|유다]]와 [[사도 요한|요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베드로는 요한 쪽으로 기대어 있고 요한은 예수 옆에 앉아 유다를 앞으로 밀고 있다. 유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을 분리하지 않으면서 강조되었다. 오른쪽의 무리는 [[마태]]와 다대오, 시몬으로 구성되는데, 그들은 열띤 토론에 빠져서 예수를 보지 않고 있다. 가운데에서 깜짝 놀라 예수 쪽으로 기대는 제자들은 도마와 대(大)야고보(요한의 형제 야고보), 빌립보이며, 이들은 예수에게 자신들의 충성을 확인하느라 열심이다.}}</ref><ref>{{인용 |url= |제목=서양미술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도서출판 예경 |날짜=1997. 5. 1. |연도= |저자=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쪽=297-298 |시리즈= |isbn=9788970840659 |인용문=그들 중에 성미가 급한 성 베드로가 예수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성 요한에게 달려간다. 그가 무엇인지를 성 요한에게 귓속에 속삭일 때 무심코 유다를 앞으로 떼밀어 유다는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지는 않았으나 고립되어 보인다. 유다만이 몸짓도 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는 몸을 젖히며 의심과 분노에 찬 모습으로 올려다보고 있는데 그의 모습은 이 갑작스러운 소란 속에 조용히 체념한 듯 앉아 있는 예수의 모습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 12사도들은 제스처와 움직임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는 세 사람씩 네 무리로 자연스럽게 구별되는 것처럼 보인다.}}</ref><br> | ||
예수님 왼편에 나란히 있는 '''첫 번째 무리'''는 바돌로매,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안드레인데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두 번째 무리'''는 베드로, 유다, 요한이다. 성급한 베드로가 요한 쪽으로 기대어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있고, 요한은 무심코 유다를 앞으로 밀고 있다. 유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강조되었다. 가운데에서 깜짝 놀라 예수님 쪽으로 기대는 '''세 번째 무리'''는 도마, 야고보(요한의 형제), 빌립이며, 이들은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충성을 확인하느라 열심 내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쪽의 '''네 번째 무리'''는 마태, 다대오, 시몬으로 구성되는데, 그들은 열띤 토론에 빠져 예수님을 보지 않고 있다.<br> | 예수님 왼편에 나란히 있는 '''첫 번째 무리'''는 바돌로매,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안드레인데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두 번째 무리'''는 베드로, 유다, 요한이다. 성급한 베드로가 요한 쪽으로 기대어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있고, 요한은 무심코 유다를 앞으로 밀고 있다. 유다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강조되었다. 가운데에서 깜짝 놀라 예수님 쪽으로 기대는 '''세 번째 무리'''는 도마, 야고보(요한의 형제), 빌립이며, 이들은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충성을 확인하느라 열심 내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쪽의 '''네 번째 무리'''는 마태, 다대오, 시몬으로 구성되는데, 그들은 열띤 토론에 빠져 예수님을 보지 않고 있다.<br> | ||
〈최후의 만찬〉에는 상징적인 요소들도 묘사돼 있다. 베드로의 손에 들린 칼은 예수님을 잡으려는 병사의 귀를 베는 데 사용할 것을 암시하고, 유다의 손에 들린 돈주머니는 은전 30냥에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상징화했다고 한다.<ref>{{웹 인용 |url=https://www.britannica.com/topic/Last-Supper-fresco-by-Leonardo-da-Vinci |제목=Last Supper |웹사이트=Britannica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Peter, who is identified by the knife in his hand that he will later use to sever the ear of a soldier attempting to arrest Jesus, moves toward the mild-tempered John, who sits to Jesus' right and appears to swoon. Judas, gripping the purse that contains his reward for identifying Jesus, recoils from Peter, seemingly alarmed at the other Apostle's quick action. }}</ref><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4721&cid=46720&categoryId=46798 |제목=최후의 만찬 |웹사이트=미술백과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성격이 불 같은 베드로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려는 듯 요한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다. 성격이 급한 그는 스승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칼을 들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이 체포될 당시 대제사장 종의 귀를 자를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자 그의 불 같은 성격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유다는 열두 제자의 회계 담당이었으므로 돈 주머니를 들고 있는데 이는 또한 그가 은전 30냥에 스승을 팔아먹으리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ref> 식탁 위에 놓인 떡과 포도주도 단순한 만찬 음식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음 날 십자가에서 찢기고 흘리실 살과 피를 상징한다.<ref name="원하였노라">{{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누가복음#22장|제목=누가복음 22:15-20|인용문=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ins>'''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ins>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ref> | |||
===구도와 화법=== | ===구도와 화법=== | ||
이 작품의 구도는 15세기 당시 피렌체에서 같은 주제를 다룬 그림들과 아주 다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제자들을 배치하고 반대편에 유다를 따로 그려 배신자를 의도적으로 고립시킨 전통적 구도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유다를 포함해 세 명씩 네 그룹으로 나눠 일렬횡대를 이루게 했다.<ref>{{웹 인용 |url=https://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cDWuOwDGJM000 |제목=파격, 긴장, 합리... '최후의' 르네상스 정신 |웹사이트= |저널=공감 |출판사=문화체육관광부 |날짜=2021. 5. 24.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다빈치는 예수를 중심으로 식탁 양쪽에 제자들을 배치하고 유독 유다만 건너편에 홀로 앉혀 배신자를 의도적으로 고립시킨 전통적 구도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식탁 가운데에 자리한 예수 양옆으로 여섯 명씩 일렬횡대를 이루는 파격적인 구성방식을 선보였다. 예수와 열두 제자 모두 식탁 한쪽으로만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뿐이다. 건너편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고 의자도 없애버렸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줄에 섞여 앉아 있는 유다의 모습은 자비를 베푸는 예수의 포용심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ref><br>또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33955&cid=60209&categoryId=60209 '원근법']으로 짜여져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예수님의 머리에 위치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8766&cid=40942&categoryId=33050 소실점(消失點)]을 중심으로 원근법이 표현되었는데, 이는 마치 그림 속 벽면과 실제 벽면이 이어져 벽 너머 공간에서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ref>{{인용 |url= |제목=서양미술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도서출판 예경 |날짜=1997. 5. 1. |연도= |저자=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쪽=296 |시리즈= |isbn=9788970840659 |인용문=성경 이야기가 이처럼 가깝고 실감나게 그려진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또 하나의 홀이 수도사의 홀과 이어져 그 안에서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지고 손을 대면 만져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었으리라. }}</ref><br> | 이 작품의 구도는 15세기 당시 피렌체에서 같은 주제를 다룬 그림들과 아주 다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제자들을 배치하고 반대편에 유다를 따로 그려 배신자를 의도적으로 고립시킨 전통적 구도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유다를 포함해 세 명씩 네 그룹으로 나눠 일렬횡대를 이루게 했다.<ref>{{웹 인용 |url=https://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cDWuOwDGJM000 |제목=파격, 긴장, 합리... '최후의' 르네상스 정신 |웹사이트= |저널=공감 |출판사=문화체육관광부 |날짜=2021. 5. 24.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다빈치는 예수를 중심으로 식탁 양쪽에 제자들을 배치하고 유독 유다만 건너편에 홀로 앉혀 배신자를 의도적으로 고립시킨 전통적 구도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식탁 가운데에 자리한 예수 양옆으로 여섯 명씩 일렬횡대를 이루는 파격적인 구성방식을 선보였다. 예수와 열두 제자 모두 식탁 한쪽으로만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뿐이다. 건너편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고 의자도 없애버렸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줄에 섞여 앉아 있는 유다의 모습은 자비를 베푸는 예수의 포용심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ref><br>또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33955&cid=60209&categoryId=60209 '원근법']으로 짜여져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예수님의 머리에 위치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8766&cid=40942&categoryId=33050 소실점(消失點)]을 중심으로 원근법이 표현되었는데, 이는 마치 그림 속 벽면과 실제 벽면이 이어져 벽 너머 공간에서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ref>{{인용 |url= |제목=서양미술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도서출판 예경 |날짜=1997. 5. 1. |연도= |저자=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쪽=296 |시리즈= |isbn=9788970840659 |인용문=성경 이야기가 이처럼 가깝고 실감나게 그려진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또 하나의 홀이 수도사의 홀과 이어져 그 안에서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지고 손을 대면 만져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었으리라. }}</ref><br> | ||
동일한 주제를 다룬 이전의 그림들과 달리 예수님과 제자들 주변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95422&cid=42642&categoryId=42642 후광]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다빈치는 뒤편 3개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밝은 빛으로 예수님을 감싸게 했다. 빛을 사용해 인물들의 입체감을 살리고 옷의 주름, 식탁 위의 접시 등 세부적인 요소까지 실감나게 묘사했다.<ref>{{인용 |url= |제목=서양미술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도서출판 예경 |날짜=1997. 5. 1. |연도= |저자=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쪽=296 |시길리즈= |isbn=9788970840659 |인용문=식탁 위에 떨어지는 빛은 얼마나 또렷했으며 또한 그 빛이 얼마나 인물들의 입체감을 살려주었을까? 아마도 수도승들은 식탁 위에 있는 접시나 의상의 주름 등의 모든 세부가 실감나게 묘사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ref> | 동일한 주제를 다룬 이전의 그림들과 달리 예수님과 제자들 주변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95422&cid=42642&categoryId=42642 후광]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다빈치는 뒤편 3개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밝은 빛으로 예수님을 감싸게 했다. 빛을 사용해 인물들의 입체감을 살리고 옷의 주름, 식탁 위의 접시 등 세부적인 요소까지 실감나게 묘사했다.<ref>{{인용 |url= |제목=서양미술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도서출판 예경 |날짜=1997. 5. 1. |연도= |저자=E. H. 곰브리치 저, 백승길, 이종숭 역 |쪽=296 |시길리즈= |isbn=9788970840659 |인용문=식탁 위에 떨어지는 빛은 얼마나 또렷했으며 또한 그 빛이 얼마나 인물들의 입체감을 살려주었을까? 아마도 수도승들은 식탁 위에 있는 접시나 의상의 주름 등의 모든 세부가 실감나게 묘사된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ref> | ||
{{인용문 |이 그림에는 동일한 테마를 다룬 이전의 그림들과 닮은 데가 하나도 없다. 이들 전통적인 그림들에서는 사도들이 식탁에 한 줄로 앉아 있고 유다만이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으며 예수는 조용히 성찬을 나누어주고 있다. 이 새로운 그림은 이전의 전통적인 그림들과 아주 다르다. | | {{인용문 |이 그림에는 동일한 테마를 다룬 이전의 그림들과 닮은 데가 하나도 없다. 이들 전통적인 그림들에서는 사도들이 식탁에 한 줄로 앉아 있고 유다만이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으며 예수는 조용히 성찬을 나누어주고 있다. 이 새로운 그림은 이전의 전통적인 그림들과 아주 다르다. |E.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백승길·이종숭 역, 예경, 1997}} | ||
다빈치는 화법(畫法)에 있어서도 기존의 방식을 탈피했다. 그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한 번 그리면 수정이 불가능한 전통적인 프레스코(fresco) 기법 대신 달걀노른자에 안료(顔料)를 섞어 그리는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2975&cid=40942&categoryId=33048 템페라(tempera)] 기법을 사용했다.<ref>{{웹 인용 |url=https://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cDWuOwDGJM000 |제목=파격, 긴장, 합리... '최후의' 르네상스 정신 |웹사이트= |저널=공감 |출판사=문화체육관광부 |날짜=2021. 5. 24.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보관성이 뛰어난 프레스코 벽화가 아니라 안료를 달걀노른자에 갠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 탈색과 손상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완성까지 오랜 구상이 필요한 다빈치의 작업 특성상 회벽이 마르기 전에 빠르게 제작을 끝내야 하는 프레스코 기법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ref> 템페라 기법은 세밀한 묘사와 환한 색채 표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벽화에 사용하면 벗겨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로 인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완성되기도 전에 곰팡이와 균열이 생기고, 식당의 습기로 그림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br>그렇게 16세기 초반에 이미 그림 상태가 나빠졌다고 하며,<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4721&cid=46720&categoryId=46798 |제목=최후의 만찬 |웹사이트=미술백과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16세기 초반부터 그림의 상태가 이미 나빠졌다고 한다. }}</ref> 홍수와 전쟁 등을 겪으면서 본모습을 잃게 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weekly.donga.com/List/3/all/11/69012/1 |제목=불후의 명작이 넝마쪼가리로 변하다 |웹사이트= |저널=주간동아 |출판사= |날짜=2004. 10. 15.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폭우 때문에 교회 바닥이 아예 물에 잠긴 적도 있었다. ... 1943년 이번에는 수도원 전체가 내려앉았다. 지붕과 벽체가 공습을 받고 폭삭 주저앉은 것이었다. }}</ref> 1970년대 후반 이탈리아 정부가 복원에 나서면서 1999년, 20여 년 만에 복원된 그림이 세간에 공개됐다.<ref>{{웹 인용 |url=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9/05/06/1999050670001.html |제목=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 |웹사이트= |저널=조선일보 |출판사= |날짜=1999.5.6.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ref>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관람 시간을 15분으로 제한하고 있는데도, 이 명화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밀라노를 방문하고 있다.<ref>{{웹 인용 |url=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618016002 |제목=단 15분 만에... 걸작의 아우라에 빠지다 |웹사이트= |저널=서울신문 |출판사= |날짜=2016. 6. 18.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다빈치 '최후의 만찬' 앞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5분}}</ref> | 다빈치는 화법(畫法)에 있어서도 기존의 방식을 탈피했다. 그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한 번 그리면 수정이 불가능한 전통적인 프레스코(fresco) 기법 대신 달걀노른자에 안료(顔料)를 섞어 그리는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2975&cid=40942&categoryId=33048 템페라(tempera)] 기법을 사용했다.<ref>{{웹 인용 |url=https://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GAJcDWuOwDGJM000 |제목=파격, 긴장, 합리... '최후의' 르네상스 정신 |웹사이트= |저널=공감 |출판사=문화체육관광부 |날짜=2021. 5. 24.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보관성이 뛰어난 프레스코 벽화가 아니라 안료를 달걀노른자에 갠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 탈색과 손상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완성까지 오랜 구상이 필요한 다빈치의 작업 특성상 회벽이 마르기 전에 빠르게 제작을 끝내야 하는 프레스코 기법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ref> 템페라 기법은 세밀한 묘사와 환한 색채 표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벽화에 사용하면 벗겨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로 인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완성되기도 전에 곰팡이와 균열이 생기고, 식당의 습기로 그림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br>그렇게 16세기 초반에 이미 그림 상태가 나빠졌다고 하며,<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4721&cid=46720&categoryId=46798 |제목=최후의 만찬 |웹사이트=미술백과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16세기 초반부터 그림의 상태가 이미 나빠졌다고 한다. }}</ref> 홍수와 전쟁 등을 겪으면서 본모습을 잃게 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weekly.donga.com/List/3/all/11/69012/1 |제목=불후의 명작이 넝마쪼가리로 변하다 |웹사이트= |저널=주간동아 |출판사= |날짜=2004. 10. 15.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폭우 때문에 교회 바닥이 아예 물에 잠긴 적도 있었다. ... 1943년 이번에는 수도원 전체가 내려앉았다. 지붕과 벽체가 공습을 받고 폭삭 주저앉은 것이었다. }}</ref> 1970년대 후반 이탈리아 정부가 복원에 나서면서 1999년, 20여 년 만에 복원된 그림이 세간에 공개됐다.<ref>{{웹 인용 |url=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9/05/06/1999050670001.html |제목=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원 |웹사이트= |저널=조선일보 |출판사= |날짜=1999.5.6.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ref>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관람 시간을 15분으로 제한하고 있는데도, 이 명화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밀라노를 방문하고 있다.<ref>{{웹 인용 |url=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618016002 |제목=단 15분 만에... 걸작의 아우라에 빠지다 |웹사이트= |저널=서울신문 |출판사= |날짜=2016. 6. 18.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다빈치 '최후의 만찬' 앞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5분}}</ref>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