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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일 혹은 탄생 기념일이라고 널리 알려졌으나 초대교회 당시에는 크리스마스가 없었다. 성경에서도 크리스마스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br> |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일 혹은 탄생 기념일이라고 널리 알려졌으나 초대교회 당시에는 크리스마스가 없었다. 성경에서도 크리스마스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br> | ||
12월 25일은 고대 로마의 달력상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로,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었다.<ref>"크리스마스", 한국어사전편찬회, 《국어대사전》, 삼성문화사, 1990, 1658쪽, "크리스마스(Christmas) [명] 그리스도(Christ)와 매스(mass)에서 온 말(<프>Noel; <독>Weihmacht; <이>Natale). 12월 25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 본디 태양의 신생(新生)을 축하하는 로마인의 동지제일(冬至祭日)이었음."</ref><ref>《오늘의 한국》1985. 12., "희랍의 달력으로는 당초 12월 25일을 동지(冬至)로 정하고 이날부터 태양의 힘이 강해진다고 믿어 「태양의 탄신일」로 정하고 성대한 의식을 진행했다. 이러한 태양숭배의 습속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이는데 농경신(農耕神) 「새턴」의 제일(祭日)이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베풀어졌고 태양신으로 숭배되었던 「미트라」의 축일도 바로 이날이었다."</ref> 미트라는 '정복 불가능한 신', '불멸의 젊은 신'이라 불리며 로마 제국에서 열렬히 신봉되었다.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미트라교의 태양신과 하나님을 동일한 신으로 간주했다.<ref>《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1991, 130-131쪽, "콘스탄틴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로마 종교계의 최고위직)라는 이방 대제사장의 칭호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었고 10년 동안 그의 화폐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신(神)으로 보여지는 불멸의 태양이라는 이방신의 상징이 나타나 있었다. … 콘스탄틴 이전의 종교인 태양 숭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콘스탄틴은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했었다."</ref> 이런 상황에서 로마 제국이 주는 많은 혜택으로 빠르게 세속화되고 있었던 교회는 태양신의 탄생일, 12월 25일을 받아들여 예수님의 탄생일로 교리화했다.<ref>"기독교와 이교적 관습",《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1991, 131쪽, "기독교회는 많은 이방 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태양 숭배로부터 예수의 탄생일이 태양제의 날인 12월 25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12월 17~21일 사이의 겨울 축제 때에는 흥겹게 놀고 선물을 교환하고 후에 성탄절 축제의 전형적인 것이 된 촛불을 켰다."</ref><ref>"크리스마스 Christmas", 《21세기웅진학습백과사전》제2권, 웅진출판주식회사, 1998, "무엇보다 12월 25일이라는 날짜는 고대 로마의 종교제사 날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 로마에서는 농업신 사투르누스를 받드는 제사(12월 17-24일)와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제사(12월 25일)가 대중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 중 12월 25일의 미트라 제사는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을 기념하는 ‘새로운 태양맞이 | 12월 25일은 고대 로마의 달력상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로,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었다.<ref>"크리스마스", 한국어사전편찬회, 《국어대사전》, 삼성문화사, 1990, 1658쪽, "크리스마스(Christmas) [명] 그리스도(Christ)와 매스(mass)에서 온 말(<프>Noel; <독>Weihmacht; <이>Natale). 12월 25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 본디 태양의 신생(新生)을 축하하는 로마인의 동지제일(冬至祭日)이었음."</ref><ref>《오늘의 한국》1985. 12., "희랍의 달력으로는 당초 12월 25일을 동지(冬至)로 정하고 이날부터 태양의 힘이 강해진다고 믿어 「태양의 탄신일」로 정하고 성대한 의식을 진행했다. 이러한 태양숭배의 습속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이는데 농경신(農耕神) 「새턴」의 제일(祭日)이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베풀어졌고 태양신으로 숭배되었던 「미트라」의 축일도 바로 이날이었다."</ref> 미트라는 '정복 불가능한 신', '불멸의 젊은 신'이라 불리며 로마 제국에서 열렬히 신봉되었다.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미트라교의 태양신과 하나님을 동일한 신으로 간주했다.<ref>《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1991, 130-131쪽, "콘스탄틴은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로마 종교계의 최고위직)라는 이방 대제사장의 칭호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었고 10년 동안 그의 화폐에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신(神)으로 보여지는 불멸의 태양이라는 이방신의 상징이 나타나 있었다. … 콘스탄틴 이전의 종교인 태양 숭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콘스탄틴은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했었다."</ref> 이런 상황에서 로마 제국이 주는 많은 혜택으로 빠르게 세속화되고 있었던 교회는 태양신의 탄생일, 12월 25일을 받아들여 예수님의 탄생일로 교리화했다.<ref>"기독교와 이교적 관습",《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1991, 131쪽, "기독교회는 많은 이방 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태양 숭배로부터 예수의 탄생일이 태양제의 날인 12월 25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12월 17~21일 사이의 겨울 축제 때에는 흥겹게 놀고 선물을 교환하고 후에 성탄절 축제의 전형적인 것이 된 촛불을 켰다."</ref><ref>"크리스마스 Christmas", 《21세기웅진학습백과사전》제2권, 웅진출판주식회사, 1998, "무엇보다 12월 25일이라는 날짜는 고대 로마의 종교제사 날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 로마에서는 농업신 사투르누스를 받드는 제사(12월 17-24일)와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제사(12월 25일)가 대중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 중 12월 25일의 미트라 제사는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을 기념하는 ‘새로운 태양맞이 축제'이다. 동양의 동지에 해당하는 절기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크리스트교도는 어둠이 짧아지고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이 날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하기로 했다. 일부 크리스트교도는 이를 두고 태양을 섬기는 이방인들의 우상숭배를 수용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크리스트교도 사이에서 급속히 받아들여졌다."</ref> 이처럼 크리스마스는 예수님 때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4세기에 만들어진 '다른 복음'이다. | ||
<small>{{참고|크리스마스 (성탄절)|l1=크리스마스 (성탄절)|설명=더 자세한 내용은}}</small> | <small>{{참고|크리스마스 (성탄절)|l1=크리스마스 (성탄절)|설명=더 자세한 내용은}}</smal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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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Sankt Jakob-1093226.jpg|Sankt_Jakob-1093226|대체글=|섬네일|200px|독일의 한 천주교회 제단에 있는 십자가]] | [[File:Sankt Jakob-1093226.jpg|Sankt_Jakob-1093226|대체글=|섬네일|200px|독일의 한 천주교회 제단에 있는 십자가]] | ||
십자가는 고대 바벨론에서 유래한 우상이자<ref>William Edwy Vine, 《Vine's 신구약 성경용어 주석사전》, Thomas Nelson Incorporated, 138쪽, "교회가 사용한 두 개의 나무로 된 십자가의 형태는 고대 갈대아(Chaldea)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그 이름의 머리 글자인 신비적인 타우(Tau) 모양임)"</ref> 처형 도구였다.<ref>"십자가형", 《CLP 성경사전》, 기독교문사, 800쪽, "십자가형(十字架刑, crucifixion) 사형수를 십자가 혹은 나무에 못 박거나 결박함으로써 처형하던 형벌. 이 처형 방식은 대중들로부터 모욕을 주고 서서히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는 잔인한 방식이다. 십자가형은 본래 페니키아와 페르시아에서 시행하던 것으로, 로마에 유입되면서 노예들과 외국인들에게만 사용되었다."</ref><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394472&cid=50762&categoryId=51387 |제목=십자가 |웹사이트=라이프 성경사전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십자가형은 로마에 도입되어 극악한 범죄자나 로마 황제의 권위에 도전한 반역자에게만 가해졌다. }}</ref> 사도 시대에 기록된 [[신약성경]]에는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삼거나 세운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사도들은 우상 숭배를 배격했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쳤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고린도전서#6장 |제목=고린도전서 6:9-10 |저널= |인용문=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ref><br> | 십자가는 고대 바벨론에서 유래한 우상이자<ref>William Edwy Vine, 《Vine's 신구약 성경용어 주석사전》, Thomas Nelson Incorporated, 138쪽, "교회가 사용한 두 개의 나무로 된 십자가의 형태는 고대 갈대아(Chaldea)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그 이름의 머리 글자인 신비적인 타우(Tau) 모양임)"</ref> 처형 도구였다.<ref>"십자가형", 《CLP 성경사전》, 기독교문사, 800쪽, "십자가형(十字架刑, crucifixion) 사형수를 십자가 혹은 나무에 못 박거나 결박함으로써 처형하던 형벌. 이 처형 방식은 대중들로부터 모욕을 주고 서서히 육체적인 고통을 가하는 잔인한 방식이다. 십자가형은 본래 페니키아와 페르시아에서 시행하던 것으로, 로마에 유입되면서 노예들과 외국인들에게만 사용되었다."</ref><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394472&cid=50762&categoryId=51387 |제목=십자가 |웹사이트=라이프 성경사전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십자가형은 로마에 도입되어 극악한 범죄자나 로마 황제의 권위에 도전한 반역자에게만 가해졌다. }}</ref> 사도 시대에 기록된 [[신약성경]]에는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삼거나 세운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사도들은 우상 숭배를 배격했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쳤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고린도전서#6장 |제목=고린도전서 6:9-10 |저널= |인용문=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ref><br> | ||
예수님 이후 약 300년간 교회에는 십자가가 없었으나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변화가 생겼다.<ref> | 예수님 이후 약 300년간 교회에는 십자가가 없었으나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변화가 생겼다.<ref>《Baker's 신학사전》, 도서출판 엠마오, 1996, 491쪽,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ref> 황제의 기독교 우대 정책으로 교회의 위상이 높아지자, 교회 지도자들이 더 많은 이교도를 전도한다는 명분 하에 이교의 사상과 상징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ref>《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131쪽 </ref> 십자가도 그중 하나였다. 십자가는 431년경 교회 내부에 도입되었고, 이후 교회 건물의 탑 꼭대기에 세워졌다.<ref>"십자가", 조셉 H. 윌시, 《Harper's Book of Facts》, 하퍼&브라더스, 1895, "교회와 사무실 속에 십자가가 도입된 것은 431년경이었고, 뾰족탑 위에 세워진 것은 568년경이었다."</ref> 이렇듯 십자가는 교회가 세속화되고 이교화하는 과정에 들어온 우상이며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다른 복음이다. | ||
<small>{{참고|십자가|l1=십자가|설명=더 자세한 내용은}}</small> | <small>{{참고|십자가|l1=십자가|설명=더 자세한 내용은}}</smal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