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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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예루살렘) 정복=== | ===시온(예루살렘) 정복=== | ||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가나안]]에 정착한 지 200년이 지나도록 지파 동맹 형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정치적, 행정적 중심지가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이스라엘 부족들의 공통점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뿐이었다. 이스라엘 부족 간 연대를 다져 나라 차원에서 백성들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신앙의 중심이 될 수도가 필요했다. 다윗은 아직 이스라엘인들이 차지하지 못한, 여부스인들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시온성을 택했다.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이곳은 오랜 전쟁에도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ref>{{인용 |url= |제목=성서 그리고 역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황소자리 |날짜= |연도= |저자=장 피에르 이즈부츠 |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178–183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91508-68-2 |인용문= }}</ref> <br> |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가나안]]에 정착한 지 200년이 지나도록 지파 동맹 형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정치적, 행정적 중심지가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이스라엘 부족들의 공통점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뿐이었다. 이스라엘 부족 간 연대를 다져 나라 차원에서 백성들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신앙의 중심이 될 수도가 필요했다. 다윗은 아직 이스라엘인들이 차지하지 못한, 여부스인들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시온성을 택했다.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이곳은 오랜 전쟁에도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ref>{{인용 |url= |제목=성서 그리고 역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황소자리 |날짜= |연도= |저자=장 피에르 이즈부츠 |저자링크= |저자2= |저자링크2= |쪽=178–183 |시리즈= |언어= |번역제목= |isbn=978-89-91508-68-2 |인용문= }}</ref> <br> | ||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시온성으로 진격했다. 어떤 통로를 이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물을 길어 올리는 바위벽을 타고 올라가 쉽게 점령했다. 시온성은 ‘다윗성’이라고도 불렸다.<ref |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시온성으로 진격했다. 어떤 통로를 이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물을 길어 올리는 바위벽을 타고 올라가 쉽게 점령했다. 시온성은 ‘다윗성’이라고도 불렸다.<ref name="시온성"/> 시온성이 있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후에 다윗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새 수도로 옮겨 왔다.<ref>{{웹 인용|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사무엘하#6장|제목=사무엘하 6:12–15|인용문=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올라갈새 ...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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