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성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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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배경==
==시대 배경==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던 남 유다 백성들은 기원전 537년경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 (키루스 2세)]]에 의해 포로에서 해방되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에스라#1장 |제목=에스라 1:1-3 |저널= |인용문=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ref> 1차로 고레스 원년에 스룹바벨을 인솔자로 하여 5만 명이 귀환 길에 올랐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다[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에스라#1장 (에스라 1-6장)]. 그로부터 약 80년 후, 아닥사스다 1세(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제7년에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귀환이 이루어졌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에스라#7장 |제목=에스라 7:7 |저널= |인용문= 아닥사스다왕 칠 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ref>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갔던 남 유다 백성들은 기원전 537년경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 (키루스 2세)]]에 의해 포로에서 해방되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에스라#1장 |제목=에스라 1:1-3 |저널= |인용문=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ref> 1차로 고레스 원년에 스룹바벨을 인솔자로 하여 5만 명이 귀환 길에 올랐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다[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에스라#1장 (에스라 1-6장)]. 그로부터 약 80년 후, 아닥사스다 1세(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제7년에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귀환이 이루어졌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에스라#7장 |제목=에스라 7:7 |저널= |인용문= 아닥사스다왕 칠 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ref>
<br />10여 년이 흐른 뒤, 바사 제국의 왕궁에서 술 관원<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394075&cid=50762&categoryId=51387 |제목=술 맡은 자(cupbearer) |웹사이트= |저널=라이프성경사전 |출판사=생명의말씀사 |날짜= |연도= |저자=가스펠서브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왕의 식탁에 올리는 술을 담당했던 관리. 고대 사회에서 술에 독약을 타서 왕을 살해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으므로 술관원은 왕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자라야 했다. 따라서 술관원은 왕의 목숨과 직결되는 존재로서 단순한 시중 역할을 넘어 심지어는 국정 깊숙이까지 개입할 정도의 고위층 관리였다. }}</ref>을 맡고 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불탔으며 백성들은 환난과 능욕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느헤미야#1장 |제목=느헤미야 1:2-3 |저널= |인용문=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ref>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닥사스다왕에게 구하여 예루살렘 성벽 중건에 필요한 조서와 자재를 지원받아 귀환해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다시 건축했다(기원전 444년경). 본서의 전반부(1-7장)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관한 내용이라면, 후반부(8-13장)는 유대 백성들의 신앙 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br />10여 년이 흐른 뒤, 바사 제국의 왕궁에서 술 관원<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394075&cid=50762&categoryId=51387 |제목=술 맡은 자(cupbearer) |웹사이트= |저널=라이프성경사전 |출판사=생명의말씀사 |날짜= |연도= |저자=가스펠서브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왕의 식탁에 올리는 술을 담당했던 관리. 고대 사회에서 술에 독약을 타서 왕을 살해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으므로 술관원은 왕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자라야 했다. 따라서 술관원은 왕의 목숨과 직결되는 존재로서 단순한 시중 역할을 넘어 심지어는 국정 깊숙이까지 개입할 정도의 고위층 관리였다. }}</ref>을 맡고 있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불탔으며 백성들은 환난과 능욕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느헤미야#1장 |제목=느헤미야 1:2-3 |저널= |인용문=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ref>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닥사스다왕에게 구하여 예루살렘 성벽 중건에 필요한 조서와 자재를 지원받아 귀환해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다시 건축했다(기원전 444년경). 본서의 전반부(1-7장)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관한 내용이라면, 후반부(8-13장)는 유대 백성들의 신앙 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