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회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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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21년경 북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했다.<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07423&cid=62097&categoryId=62097 |제목=북이스라엘의 몰락과 멸망  |웹사이트= |저널=이스라엘사 |출판사=미래엔 |날짜= |연도=|저자=최창모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북이스라엘은 호세아 왕 때에 유프라테스 강 서편 지역과 지중해 연안을 공격하기 시작한 아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의 공격을 받았고, 3년 동안의 포위를 견디지 못하고 수도 사마리아는 기원전 721년에 함락되고 말았다(열왕기하 17:1~6). }}</ref> 하나님의 보호로 남 유다는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9장 |제목=열왕기하 19:30-35 |저널= |인용문=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ref> 점차 애굽(이집트)을 의지했다.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이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남 유다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왕에 복종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권고<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27장 |제목=예레미야 27:13-17 |저널= |인용문= 왕과 백성에게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하나이다 ... 너희는 그들을 듣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으로 황무지가 되게 하겠느냐}}</ref>를 무시하고 애굽의 힘을 빌리려 했다. 결국 남 유다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기원전 586년경에 멸망당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5장 |제목=열왕기하 25:8-12 |저널= |인용문=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 년 오 월 칠 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는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다 사로잡아가고}}</ref><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376253&cid=50762&categoryId=51365 |제목=유다  |웹사이트= |저널=교회용어사전 |출판사=생명의말씀사 |날짜= |연도=|저자=가스펠서브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상 부침을 계속하다가 B.C.586년경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다(대하 36:15-21). }}</ref> <br>
기원전 721년경 북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했다.<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07423&cid=62097&categoryId=62097 |제목=북이스라엘의 몰락과 멸망  |웹사이트= |저널=이스라엘사 |출판사=미래엔 |날짜= |연도=|저자=최창모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북이스라엘은 호세아 왕 때에 유프라테스 강 서편 지역과 지중해 연안을 공격하기 시작한 아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의 공격을 받았고, 3년 동안의 포위를 견디지 못하고 수도 사마리아는 기원전 721년에 함락되고 말았다(열왕기하 17:1~6). }}</ref> 하나님의 보호로 남 유다는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19장 |제목=열왕기하 19:30-35 |저널= |인용문=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ref> 점차 애굽(이집트)을 의지했다.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이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남 유다 왕 시드기야는 바벨론왕에 복종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권고<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27장 |제목=예레미야 27:13-17 |저널= |인용문= 왕과 백성에게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하나이다 ... 너희는 그들을 듣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으로 황무지가 되게 하겠느냐}}</ref>를 무시하고 애굽의 힘을 빌리려 했다. 결국 남 유다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기원전 586년경에 멸망당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열왕기하#25장 |제목=열왕기하 25:8-12 |저널= |인용문=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 년 오 월 칠 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는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다 사로잡아가고}}</ref><ref>{{웹 인용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376253&cid=50762&categoryId=51365 |제목=유다  |웹사이트= |저널=교회용어사전 |출판사=생명의말씀사 |날짜= |연도=|저자=가스펠서브 |쪽= |시리즈= |isbn= |인용문=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상 부침을 계속하다가 B.C.586년경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다(대하 36:15-21). }}</ref> <br>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성전은 파괴되었다. 유다 민족은 삶의 터전과 신앙의 전통을 상실한 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암울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시온의 회복이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시편#137장 |제목=시편 137:1-6 |저널= |인용문=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ref> 이들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시온을 회복해 주실 거라고 굳게 믿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시편#102장 |제목=시편 102:13 |저널= |인용문=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시편#14장 |제목=시편 14:7 |저널= |인용문=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시편#53장 |제목=시편 53:6 |저널= |인용문=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25장 |제목=예레미야 25:11-14 |저널= |인용문=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ref> <br>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성전은 파괴되었다. 유다 민족은 삶의 터전과 신앙의 전통을 상실한 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암울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시온의 회복이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시편#137장 |제목=시편 137:1-6 |저널= |인용문=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ref> 이들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시온을 회복해 주실 거라고 굳게 믿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시편#102장 |제목=시편 102:13 |저널= |인용문=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시편#14장 |제목=시편 14:7 |저널= |인용문=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시편#53장 |제목=시편 53:6 |저널= |인용문=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ref><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예레미야#25장 |제목=예레미야 25:11-14 |저널= |인용문=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ref> <br>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메대 바사 (페르시아)|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 (키루스 2세)|고레스]]에 의해 성취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이사야#44장 |제목=이사야 44:28-45:13 |저널= |인용문=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ref> 기원전 537년경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 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포로에서 해방시키고 고토에 귀향해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렸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에스라#1장 |제목=에스라 1:1-3 |저널= |인용문=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ref><ref>{{웹 인용 |url=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7410&Newsnumb=2019077410 |제목=베르디의 오페라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웹사이트= |저널=월간조선 |출판사= |날짜=2019. 7. 14. |연도=|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나라를 잃고 땅까지 빼앗긴 채 바빌론에 정착한 유대인 포로들에게 종교적 자유는 허용되었다. 다만 예루살렘 신전에서처럼 종교적 제의(祭儀)는 할 수 없었다. 포로들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의 포고로서 귀환이 허용되었는데 1차 귀환은 BC 537년, 2차 귀환은 458년, 3차 귀환은 444년에 이뤄졌다고 기록돼 있다. }}</ref> <br>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메대 바사 (페르시아)|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 (키루스 2세)|고레스]]에 의해 성취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이사야#44장 |제목=이사야 44:28-45:13 |저널= |인용문=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ref> 기원전 537년경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 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포로에서 해방시키고 고토에 귀향해 성전을 건축하라는 칙령을 내렸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에스라#1장 |제목=에스라 1:1-3 |저널= |인용문=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ref><ref>{{웹 인용 |url=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7410&Newsnumb=2019077410 |제목=베르디의 오페라곡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웹사이트= |저널=월간조선 |출판사= |날짜=2019. 7. 14. |연도=|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나라를 잃고 땅까지 빼앗긴 채 바빌론에 정착한 유대인 포로들에게 종교적 자유는 허용되었다. 다만 예루살렘 신전에서처럼 종교적 제의(祭儀)는 할 수 없었다. 포로들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의 포고로서 귀환이 허용되었는데 1차 귀환은 BC 537년, 2차 귀환은 458년, 3차 귀환은 444년에 이뤄졌다고 기록돼 있다. }}</ref> <br>
유다 민족은 기쁨과 즐거움 속에 귀국해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헌신했다. 하지만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사마리아에 새로 정착한 민족들이 그들의 공사를 방해했고,<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느헤미야#4장 |제목=느헤미야 4:7-8 |저널= |인용문=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ref> 노동력은 부족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느헤미야#7장 |제목=느헤미야 7:4 |저널= |인용문=그 성은 광대하고 거민은 희소하여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ref>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유다 민족은 일심으로 성전과 성벽 건축에 힘써 마침내 시온 회복의 기쁨을 맛보았다.
유다 민족은 기쁨과 즐거움 속에 귀국해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헌신했다. 하지만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사마리아에 새로 정착한 민족들이 그들의 공사를 방해했고,<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느헤미야#4장 |제목=느헤미야 4:7-8 |저널= |인용문=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ref> 노동력은 부족했다.<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느헤미야#7장 |제목=느헤미야 7:4 |저널= |인용문=그 성은 광대하고 거민은 희소하여 가옥을 오히려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ref>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유다 민족은 일심으로 성전과 성벽 건축에 힘써 마침내 시온 회복의 기쁨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