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휴업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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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휴업령의 영향== | ==일요일 휴업령의 영향== | ||
===일요일 예배 확립=== | ===일요일 예배 확립=== | ||
2세기 초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는 이방인 신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기독교를 지속적으로 핍박해 온 유대교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두 차례 유대 전쟁이 일어나고 로마제국이 유대인들을 박해하는 정책을 펴자 서방 교회 신자들은 굳이 유대교와 같은 날에 지키는 안식일을 고수해 로마제국으로부터 더 많은 핍박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당시 로마에서 가장 인기 있던 태양신 미트라교의 성일인 일요일을 예배일로 삼으면 로마인들의 환심을 얻어 핍박을 피하고 더 나아가 로마인들을 개종시키는 일이 더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로마 교회는 2세기 초부터 안식일 대신 일요일에 예배하기 시작했다. <br> | 2세기 초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는 이방인 신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기독교를 지속적으로 핍박해 온 유대교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두 차례 유대 전쟁이 일어나고 로마제국이 유대인들을 박해하는 정책을 펴자 서방 교회 신자들은 굳이 유대교와 같은 날에 지키는 안식일을 고수해 로마제국으로부터 더 많은 핍박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당시 로마에서 가장 인기 있던 태양신 미트라교의 성일인 일요일을 예배일로 삼으면 로마인들의 환심을 얻어 핍박을 피하고 더 나아가 로마인들을 개종시키는 일이 더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로마 교회는 2세기 초부터 안식일 대신 일요일에 예배하기 시작했다. <br> | ||
서방 교회는 일요일 예배를 정당화하는 다양한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변증가 유스티누스(저스틴, Justinus)는 150년경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재위 138-161년)에게 쓴 '제1변증서'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한 날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이 첫 날인 태양의 날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이날에 예배를 드린다고 설명했다.<ref>유충희, 《예수의 최후만찬과 초대교회의 성만찬 연구》, 우리신학연구소, 1999, 152-158쪽, "[유스티누스, 제1변증서] 67, 7. 우리 모두는 일요일에 공동체 모임을 가집니다. 그 까닭인즉, 일요일은 하나님께서 어두움과 물질을 변화시켜 세상을 창조하신 첫날이었기 때문이요, 아울러 우리 구원자인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로부터 같은 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유대인들)은 토요일 전날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그분은 토요일 다음날, 즉 일요일에 당신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우리가 여러분에게 숙고하도록 전해준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ref><br> | 서방 교회는 일요일 예배를 정당화하는 다양한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변증가 유스티누스(저스틴, Justinus)는 150년경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재위 138-161년)에게 쓴 '제1변증서'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한 날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이 첫 날인 태양의 날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이날에 예배를 드린다고 설명했다.<ref>유충희, 《예수의 최후만찬과 초대교회의 성만찬 연구》, 우리신학연구소, 1999, 152-158쪽, "[유스티누스, 제1변증서] 67, 7. 우리 모두는 일요일에 공동체 모임을 가집니다. 그 까닭인즉, 일요일은 하나님께서 어두움과 물질을 변화시켜 세상을 창조하신 첫날이었기 때문이요, 아울러 우리 구원자인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로부터 같은 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유대인들)은 토요일 전날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그분은 토요일 다음날, 즉 일요일에 당신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우리가 여러분에게 숙고하도록 전해준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ref><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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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321년에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을 내린 것'''이다. 이 법령은 주의 날을 이교의 제전일(祭典日)과 동등한 수준의 절기로 인정한 것이며, 일요일은 일을 중지하는 것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 날은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만 단순히 참된 경일(慶日)<ref>영어 원문에는 '참된 경일'이 아니라 라틴어로 'dies venerabilis solis(존엄한 태양의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음.</ref>이라고만 불리웠는데 여기에 대하여 이교도들이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J.W.C. 완드, 《교회사(초대편)》, 이장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0, 193쪽}} | {{인용문|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321년에 일요일을 예배의 날로 규정한 법령을 내린 것'''이다. 이 법령은 주의 날을 이교의 제전일(祭典日)과 동등한 수준의 절기로 인정한 것이며, 일요일은 일을 중지하는 것으로 그 특색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 날은 어떠한 그리스도교적인 명칭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만 단순히 참된 경일(慶日)<ref>영어 원문에는 '참된 경일'이 아니라 라틴어로 'dies venerabilis solis(존엄한 태양의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음.</ref>이라고만 불리웠는데 여기에 대하여 이교도들이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J.W.C. 완드, 《교회사(초대편)》, 이장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0, 193쪽}} | ||
일요일 휴업령은 기독교가 일요일 예배를 공식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시기에는 안식일 등 진리를 고수했으나 핍박이 그치고 우대받게 되자 안식일을 준수해오던 동방의 교회들까지 로마 태양신교에 굴복하게 된 것이다. 일요일 예배는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황제의 권위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사람의 계명]]이다. | 일요일 휴업령은 기독교가 일요일 예배를 공식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가 핍박을 받던 시기에는 안식일 등 진리를 고수했으나 핍박이 그치고 우대받게 되자 안식일을 준수해오던 동방의 교회들까지 로마 태양신교에 굴복하게 된 것이다. 일요일 예배는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황제의 권위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사람의 계명]]이다. | ||
<small>{{참고|주일예배 (일요일 예배)|설명=더 자세한 내용은}}</small> | |||
===일요일 공휴일 제도의 확산=== | ===일요일 공휴일 제도의 확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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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 ==관련 영상== | ||
*Church of God TUBE 공식 채널 영상: '''주일 예배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 *Church of God TUBE 공식 채널 영상: '''주일 예배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 ||
<youtube>7vjPAGAwJtM | <youtube>7vjPAGAwJtM</youtube> | ||
==각주== | ==각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