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계명: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파일:The golden calf at Bethel.jpg |섬네일 | 250px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 하고, 자기 마음대로 정한 날을 절기로 삼아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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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으신 자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사단 (마귀) | 사단]]과 그 수하의 일꾼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그들이 행하는 주요 활동은 때와 법을 변경하는 일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없애고 사람의 계명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퍼뜨릴 예언이다. 가라지의 비유에서 마귀를 상징하는 원수가 주인의 농사를 훼방하기 위해 가라지를 덧뿌리는 것과 같다. 성경은 예수님이 전하시지 않은 [[다른 복음]]이 등장할 것도 예언하고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사단 (마귀) | 사단]]과 그 수하의 일꾼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그들이 행하는 주요 활동은 때와 법을 변경하는 일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없애고 사람의 계명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퍼뜨릴 예언이다. 가라지의 비유에서 마귀를 상징하는 원수가 주인의 농사를 훼방하기 위해 가라지를 덧뿌리는 것과 같다. 성경은 예수님이 전하시지 않은 [[다른 복음]]이 등장할 것도 예언하고 있다.  
{{인용문5 |내용=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출처= [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갈라디아서#1장 갈라디아서 1:6-7]}}  
{{인용문5 |내용=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출처= [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갈라디아서#1장 갈라디아서 1:6-7]}}  
가라지가 덧뿌려질 예언대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았던 사도들이 죽고 난 이후 사람의 계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유에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라고 했으므로,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즉시 심판받지 않고 세상 끝 날까지 이어진다. 그 결과, 번식력이 왕성한 가라지처럼 사람의 계명이 급격히 전파되어 온 세상이 불법으로 가득하게 되고 말았다.
가라지가 덧뿌려질 예언대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았던 사도들이 죽고 난 이후 사람의 계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유에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라고 했으므로,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즉시 심판받지 않고 세상 끝 날까지 이어진다. 그 결과, 번식력이 왕성한 가라지처럼 사람의 계명이 급격히 전파되어 온 세상이 불법으로 가득하게 되고 말았다.


==대표적인 사람의 계명==
==대표적인 사람의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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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숭배===
===십자가 숭배===
[[파일:Holy Cross church in Złoczew (1).jpg |섬네일 | 250px |십자가 형상을 만들어 세우는 것은 교회가 세속화 되면서 유입된 이방 종교의 관습이다.]]
[[파일:Holy Cross church in Złoczew (1).jpg |섬네일 | 250px |십자가 형상을 만들어 세우는 것은 교회가 세속화 되면서 유입된 이방 종교의 관습이다.]]
오늘날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으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 콘스탄틴<ref>{{인용 |url= |제목=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274.2.27~337.5.22) |웹사이트= |저널=두피디아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고대 로마 황제(재위 306∼337).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제 퇴위 후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 제국을 재통일시켰으며, 로마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다. 그리고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인한 황제로서도 유명하다. }}</ref> 시대까지 거의 300년 동안 교회에 십자가를 세우는 일은 없었다. 교회가 로마 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당하는 동안 십자가는 성도들을 처형하는 끔찍한 사형 도구였으므로<ref>{{인용 |url= |제목=바퀴와 속도의 문명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연세대학교출판부 |날짜=2008.12.15. |연도= |저자=임정택 외 |쪽=119 |시리즈= |isbn= |인용문=십자가는 한편 잔혹한 처형 도구이기도 했다. 십자가에 못 박는 형벌은 페니키아인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한편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페르시아인들 사이에서 처음 십자가형이 행해졌다. 이를 종합하면 십자가를 상징으로 사용하던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민족 사이에 십자가를 사형틀로 이용하는 풍습이 번져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도 자신이 정복한 페르시아로부터 십자가 처형 방식을 받아들였으며 이것이 후일 헬레니즘 세계와 카르타고, 다시 로마로 전해졌다. }}</ref> 사도 시대에는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삼거나 교회에 세울 여지조차 없었다. 십자가를 종교적 상징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다.<ref>{{인용 |url= |제목=Baker's신학사전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1996 |저자= 신성종 역 |쪽=491 |시리즈= |isbn= |인용문=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자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ref> 콘스탄틴 황제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박해를 멈추었다. 기독교를 우대하는 그의 정책은 교회가 세속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형상을 만들어 신을 섬기는 이방 종교의 관습도 이때 유입되었다. 그중 하나가 십자가다. 십자가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며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출애굽기#20장 |제목=출애굽기 20:4 |저널= |인용문=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ref> 하신 하나님의 계명에 반하는 사람의 계명이다. {{인용문 |교회가 사용한 두 개의 나무로 된 '''십자가'''의 형태는 고대 갈대아(Chaldea)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한 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그 이름의 머리 글자인 신비적인 타우 모양임). | {{인용 |url= |제목=Vine's 신구약 성경용어 주석사전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Thomas Nelson Publishers |날짜= |연도=1996 |저자=W. E. 바인 |쪽=138 |시리즈= |isbn= |인용문= }}}}
오늘날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으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 콘스탄틴<ref>{{인용 |url= |제목=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274.2.27~337.5.22) |웹사이트= |저널=두피디아 |출판사= |날짜= |연도= |저자= |쪽= |시리즈= |isbn= |인용문=고대 로마 황제(재위 306∼337).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제 퇴위 후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 제국을 재통일시켰으며, 로마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다. 그리고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인한 황제로서도 유명하다. }}</ref> 시대까지 거의 300년 동안 교회에 십자가를 세우는 일은 없었다. 교회가 로마 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당하는 동안 십자가는 성도들을 처형하는 끔찍한 사형 도구였으므로<ref>{{인용 |url= |제목=바퀴와 속도의 문명사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연세대학교출판부 |날짜=2008.12.15. |연도= |저자=임정택 외 |쪽=119 |시리즈= |isbn= |인용문=십자가는 한편 잔혹한 처형 도구이기도 했다. 십자가에 못 박는 형벌은 페니키아인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한편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페르시아인들 사이에서 처음 십자가형이 행해졌다. 이를 종합하면 십자가를 상징으로 사용하던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민족 사이에 십자가를 사형틀로 이용하는 풍습이 번져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도 자신이 정복한 페르시아로부터 십자가 처형 방식을 받아들였으며 이것이 후일 헬레니즘 세계와 카르타고, 다시 로마로 전해졌다. }}</ref> 사도 시대에는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삼거나 교회에 세울 여지조차 없었다. 십자가를 종교적 상징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다.<ref>{{인용 |url= |제목=Baker's신학사전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 |날짜= |연도=1996 |저자= 신성종 역 |쪽=491 |시리즈= |isbn= |인용문=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자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ref> 콘스탄틴 황제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박해를 멈추었다. 기독교를 우대하는 그의 정책은 교회가 세속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형상을 만들어 신을 섬기는 이방 종교의 관습도 이때 유입되었다. 그중 하나가 십자가다. 십자가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며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ref>{{웹 인용 |url=https://ko.wikisource.org/wiki/개역한글판/출애굽기#20장 |제목=출애굽기 20:4 |저널= |인용문=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ref> 하신 하나님의 계명에 반하는 사람의 계명이다. {{인용문 |교회가 사용한 두 개의 나무로 된 '''십자가'''의 형태는 고대 갈대아(Chaldea)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한 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그 이름의 머리 글자인 신비적인 타우 모양임). | {{인용 |url= |제목=Vine's 신구약 성경용어 주석사전 |웹사이트= |저널= |출판사=Thomas Nelson Publishers |날짜= |연도=1996 |저자=W. E. 바인 |쪽=138 |시리즈= |isbn= |인용문= }}}}
<small>{{참고|십자가|l1=십자가|설명=더 자세한 내용은}}</small>
<small>{{참고|십자가|l1=십자가|설명=더 자세한 내용은}}</small>
===추수감사절===
===추수감사절===